개요 : 미스터리, 스릴러
개봉일 : 2019-10-10
감독 : 고명성
출연 : 김상경, 허성태, 박선영, 김동영
등급 : 12세 관람가
고명성의 [열두 번째 용의자]는 부천에서는 [남산시인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던 작품이지요. '남산시인'이 좀 부정확한 표현이긴 한데, 그래도 새 제목인 [열두 번째 용의자]보다는 나은 거 같습니다. 용의자가 열두 명이라니 일단 너무 많아서 제목의 임팩트가 떨어지고 장르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스포일러지요.
한국전쟁이 막 끝난 1953년, 예술가들이 단골이라는 명동 오리엔타르 다방이라는 곳이 무대예요. 도입부와 에필로그 그리고 중간중간에 나오는 회상 장면을 제외하면 영화의 거의 모든 사건이 이 다방 안에서 벌어집니다. 연극적이죠. 전 이런 연극적인 상황을 와이드스크린 화면으로 그리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정말 그 무대적 특성은 잘 살렸습니다. 3D였다면 재미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잠시 해봤어요.
전통적인 추리 연극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김기채 상사라는 군수사관이 저명한 시인 백두환이 남산에서 살해당한 사건을 수사하러 오리엔타르 다방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다방 안에는 그 사건과 관련된 용의자들만 모여 있는 거죠. 굉장히 인위적이지만 그만큼이나 전통적이라 납득이 가는 설정입니다.
용의자들의 구별이 조금 어렵고 머릿수도 많아서 초반엔 정보 정리가 어렵지만 그래도 호기심을 자극하며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살인사건은 1950년대 초반 남한의 정치, 역사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지나치게 등장인물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야기엔 두툼한 시대적 개성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영화는 의도가 드러나는 중반 이후로 조금 재미가 없어집니다. 적어도 전 그렇게 느꼈어요. 앞에서 말했지만 이 영화는 역사추리물이에요. 실존인물이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일제강점기와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을 겪었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이들은 모두 시대의 조건에 갇혀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정말 매력적이란 말이죠.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살아숨쉬는 사람들로 만드는 대신 한국 현대사의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만들어버립니다. 그 때문에 주제와 교훈은 명쾌해졌는데, 전 좀 김이 빠졌어요. 특히 도입부에서 공들여 분위기를 잡아 묘사한 최유정은 실망스럽죠. 교훈을 만들기 위한 기계와 같은 캐릭터니까요. 주제를 조금 놓치더라도 캐릭터 수를 줄이고 이들에게 숨쉴 여유를 주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요. 빈 부분은 어차피 관객과 비평가들이 알아서 채울 텐데요.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