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이미지
뺑반

   개요   :  범죄, 액션

   개봉일   :  2019-01-30

   감독   :  한준희

   출연   :  공효진, 류준열, 조정석

   등급   :  15세 관람가



[뺑반]은 한국에서 주인공을 여자로 삼아 조폭 영화를 만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지만 다들 안 본 척 하는 [차이나타운]을 감독한 한준희의 신작입니다. 당연히 이번 영화에서도 여성 캐릭터가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지요. 공효진 이름이 가장 먼저 올라가고 염정아와 전혜진도 꽤 중요한 역으로 나오는 거 같으니 말이죠.

우리가 맨 처음 접하는 주인공은 공효진이 연기한 내사과의 은시연 경위입니다. 영화 초반에 강압수사를 했다는 오명을 쓰고 인천의 뺑소니 전담반으로 좌초되지요. 하지만 이건 속임수예요. 뺑반의 보스인 우선영 계장은 은시연의 직속상관 윤지현 과장의 동기이고 내사과의 타겟인 F1 레이서 출신의 사업가 정재철이 인천에서 뺑소니 사고를 냈다는 의심을 받고 있거든요. 좌천된 척 하면서 정재철을 수사한다는 큰 그림인 거죠.

이건 아주 전통적인 경찰 서사의 도입부잖아요. 엘리트 경찰이 좌천되어 지방 경찰의 조금 이상한 무리들과 한 팀이 되어 어울리다가 큰 사건을 해결한다는. 그리고 은시연이 뺑반에 들어와 이 팀의 에이스인 서민재 순경과 만나는 장면은 상당히 좋아요. 무심하게 따라가는 엘리트 수사관의 눈을 통해 뺑소니 교통사고와 그 주변의 생태계에서 생업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아주 그럴싸하게 소개되고 있죠. 이 흐름을 타면 재미있는 영화가 나올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근데 그 이후부터는 조금 이상해집니다. 서민재가 은시연의 파트너가 되는 건 이런 식의 버디 영화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데,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서민재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집니다. 과거의 사연이 장황하게 열거되고 그러는 동안 캐릭터는 불필요하게 비대해져요. 주인공이 바뀌는 거죠. 전 A인 척하면서 B로 옮겨가는 이야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좀 그렇습니다. 일단 이 비대해진 캐릭터가 좀 재미가 없거든요. 왕년에 폭주족이었고 뉘우쳤고 자기가 부상을 입힌 전직 경찰을 아버지처럼 보살피고 있고 뺑반에서 셜록 홈즈이고. 그러니까 70년대 [수사반장]에 나왔을 법한 캐릭터에 온갖 좋은 걸 다 붙여 놨는데, 그게 다 어디서 본 기성품인 거죠. 드라마도 익숙하고.

악역으로 나오는 정재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도 비중이 상당히 크고 조정석이 엄청 크게 연기를 하고 있는데, 역시 사연이 덕지덕지 붙었고 캐릭터도 세지만 [베테랑]에서 모 채소군이 연기했던 악당처럼 좀 흔해빠진 인물이에요. 관객들의 분노와 혐오를 자극하는 돈 많은 사이코패스요. 조정석이 이 캐릭터를 너무 진지하게 연기하면서 좋아하기 때문에 더 심심해집니다. 아무리 차별성을 두려고 해도 거기서 거기이고 너무 많이 봤으니까요.

이러니 궁금해집니다. 이게 한준희의 원래 계획인가? 이 영화에서는 여자들의 이야기와 남자들의 이야기가 따로 놀아요. 여자들의 캐릭터는 신선하고 경찰 영화의 흔한 공식을 따르더라도 배우들이 그 따분함과 거리를 둔 연기를 보여주며 무엇보다 이 영화 이야기의 큰 그림을 형성합니다. 하지만 남자들의 이야기는 이들과 잘 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전형적이고 요란해요. 보고 있으면 "왜 쟤들이 저렇게 으르렁거리다 차를 모는 거지?"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는 거죠. 솔직히 4분의 1정도로 줄이고 그 시간에 저들이 다른 캐릭터들과 어울리는 게 나았을 거예요. 그러면 뺑반의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더 재미있게 보여줄 수 있고요.

하지만 애당초부터 투자자들은 여자 셋이 주인공인 경찰 영화는 건드리려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암만 생각해도 이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타협 같아 보입니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래 보여요. 좋은 재료들이 두려움과 습관 때문에 은근슬쩍 망가진 거죠.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