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공포, 스릴러
개봉일 : 2015-07-16
감독 : 오인천
출연 : 이관훈, 정보름, 박은석 외
등급 : 15세 관람가
[십이야: 깊고 붉은 열 두 개의 밤 Chapter 1]. 제목도 길어라. [소녀괴담]의 오인천이 감독한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제목에 Chapter 1라고 나와 있고 이 영화에는 네 편만 실려 있으니 앞으로 영화 두 편을 더 만들 생각인 모양인데, 정말 만들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첫 편인 [드라이버]의 주인공은 인식이라는 대리운전기사입니다. 어느 날 돈이 많아보이는 미모의 여자손님을 태우고 가는데, 갑자기 그 손님이 자기를 죽이면 트렁크에 있는 자기 전재산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습니다. 한참 고민하던 인식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요.
어디서 들은 거 같은 설정이지만 그래도 궁금증을 자극하는 도입부 아닙니까? 그런데 영화는 오로지 도입부만 갖고 있습니다. 도입부의 설정을 소비하자마자 영화는 갑자기 호러 결말로 뚝 떨어집니다. 그리고 그 결말이 너무 싱겁고 재미가 없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죠.
[PM 11:55]는 오피스텔에 혼자 사는 영란이라는 번역가가 주인공입니다. 편집장의 늦은 수정 요구를 따르느라 밤작업을 막 끝낸 오후 11시 55분에 누군가가 초인종 벨을 누릅니다. 모니터를 보니 후드를 쓴 정체불명의 남자가 서 있어요. 경찰에 연락하고 싶지만 휴대전화를 차 안에 두고 왔고 인터넷으로 연락하려고 하니 갑자기 정전이 됩니다.
이건 현실성 돋는 굉장히 무서운 설정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관객들을 자극할만한 호러 장치를 하나나 둘 정도 갖고 있어요. 이 정도면 단편 영화 한 편으로는 충분한 재료인데, 이번에도 소재에 맞는 결말이 없습니다. 결말이 1편보다는 나은데, 드라마의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도 아니고 파격의 맛도 없이 생뚱맞아요. 그리고 혼자 사는 직업 여성이 자기 아파트에서 겪는 공포라는 주제는 얼마 전에 미쟝센 영화제에서 본 단편 [도어락]이 훨씬 잘 살렸지요.
[남의 소리]는 광현이라는 사운드 디자이너가 주인공인데, 앰비언스 사운드 소스를 녹음하러 공원에 갔다가 정체불명의 여자 목소리를 듣습니다. 역시 어디서인가 들은 것 같지만 엄청 효과적인 설정인데... 아, 첫 번째 영화의 결말을 그대로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건들을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였을 거라고 믿고 싶지만... 그래도 게으른 거죠.
마지막 단편인 [비밀의 밤]은 자기 회사의 비밀 정보를 훔쳐 팔려는 영민이라는 직원이 주인공입니다. USB 메모리에 필요한 자료를 담고 빠져나오려던 영민은 그만 선배인 하윤과 마주칩니다. 여기서부터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두 여자의 갈등이 폭발하죠.
네, 아까 했던 말을 되풀이하게 되는군요. 설정은 좋습니다. 심지어 이 영화의 결말은 앞의 단편들과는 달리 비교적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심리묘사와 캐릭터가 피상적이고 그 비교적 자연스럽다는 결말도 안이하기 짝이 없는 귀신 영화의 결말이라 별 재미는 없습니다.
요약하면 '설정낭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대부분 장르를 잘못 잡았어요. 특히 [드라이버]는 귀신 영화보다는 스릴러로 가야 가능성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이야기였죠. 나머지 영화도 깊은 고민이 없이 성급하게 만든 티가 역력합니다. 극저예산에 7회차로 허겁지겁 만든 영화인 건 알겠는데, 그래도 각본의 허술함까지 이해해줄 수는 없어요. (15/07/13)
★☆
기타등등
셰익스피어의 [십이야]에서 제목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던데, 셰익스피어의 [십이야]는 열 두 밤이 아니라 열 두 번째 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