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드라마
개봉일 : 2018-12-19
감독 : 강형철
출연 : 디오, 자레드 그라임스, 박혜수, 오정세, 김민호
등급 : 12세 관람가
강형철의 신작 [스윙키즈]의 원작은 [로기수]라는 뮤지컬입니다. 이 뮤지컬은 베르너 비쇼프가 한국전 때 찍은 사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해요. 거제도의 전쟁포로들이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가면을 쓰고 스퀘어댄스를 추고 있는. 이 사진을 바탕으로 탭댄스를 갈망하는 북한 포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직접 본 작품이 아니라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https://pro.magnumphotos.com/image/PAR8533.html
영화의 배경은 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입니다. 공산포로와 반공포로가 한참 대립 중이라 상황이 살벌하기 짝이 없는데, 새로 들어온 소장은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포로들이 출연하는 쇼를 기획합니다. 이를 위해 잭슨이라는 브로드웨이 댄서 출신의 하사관이 불려옵니다. 잭슨은 4개 국어를 하는 양공주 양판례의 도움을 받아 오디션을 시작하는데, 강성 공산포로인 로기수가 아무래도 춤실력이 가장 좋은 거 같습니다. 기수는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점점 탭댄스의 유혹에 빠집니다.
설정만 보면 분단상황을 다룬 전형적인 한국 멜로드라마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 상당수는 여기저기 선전물에서 가져온 거 같아서 친숙합니다. 당연히 당시 역사와 수용소 내의 상황은 단순화되었고요. 이 익숙한 재료 위에 뜬금없이 뮤지컬이 들어온 거죠. 그것도 1950년대나 60년대에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졌을 거 같은 와이드스크린 뮤지컬요. 이것만으로도 [스윙키즈]는 상당히 낯선 괴물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물은 좀 재미있어요. 일단 이 영화에는 근대사를 다룬 다른 한국 영화들과는 달리 남자들의 자기 연민이 적습니다. 이 영화 속 사람들 대부분은 비참하거나 한심한 상황에 빠져 있지만 일단 춤과 노래라는 목표가 주어지고 코미디가 추가되자 에너지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릅니다. 당연히 잔인한 현실이 그 뒤를 따라오지만 이 판타지에 가까운 목표가 존재하는 한, 영화는 익숙한 구질구질함에서 벗어납니다. 역사를 다룰 때에도 영화는 의외로 쿨한 태도를 취합니다. 잭슨과 양판례가 미국의 흑인남자와 한국 여자 중 어느 쪽으로 사는 게 더 끔찍한지를 두고 대결하는 부분 같은 장면들이 그래요. 가볍고 경쾌하기 그려졌기 때문에 오히려 그 의미가 더 뚜렷하게 전달되지요.
의외로 정통적인 뮤지컬 영화입니다. 강형철의 특기인 독특한 코미디의 리듬감이 뮤지컬이라는 장르에서도 빛을 발하는 거죠. [스윙키즈]는 내내 박자를 두드리게 되는 종류의 영화입니다. 실제 역사의 비극과 허구의 코미디가 정신없이 뒤집히는 잡다한 스토리 안에서도 이 리듬감은 영화에 통일감을 부여합니다.
단지 한계가 있습니다. 아주 음악적인 영화이고 리듬감도 뛰어난데, 정작 이런 장르에서 당연시되는 춤과 음악에 대한 관심이 적어요. 영화는 두 세계의 충돌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까? 50년대 초반 미국 대중문화와 한국대중문화가 충돌하고 대화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멋진 기회인 겁니다. 찾아본다면 소스도 무궁무진할 거고요. 하지만 영화는 여기에 관심이 없는지, 아니면 관객들이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 건지, 별다른 음악적 탐구를 하지 않습니다. 삽입곡들은 종종 무성의하다고 느껴질 정도예요. 예를 들어 클라이맥스 공연에 루이스 프리마의 [Sing, Sing, Sing]을 쓴다면 그건 그냥 음악을 쓰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장면에 나오는 데이빗 보위의 [모던 러브] 선곡 같은 거야 한 번만 나오면 이해가 가죠. 충무로 영화는 원래 한국전쟁 군인이 트위스트를 추는 정도의 시대착오는 용납하는 전통이 있고, 뮤지컬도 그 정도 융통성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시대착오적 선곡이 이것 하나로만 끝나는 게 아니고,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 영화에 쓰여서 50년대 포로수용소 배경의 뮤지컬이라는 설정에 도움이 되는 곡은 거의 없습니다. 곡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요. 딱 자기가 알고 친숙한 수준에서 멈추어 선 것입니다.
춤을 담아내는 방식도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잭슨 역의 제러드 그라임스와 기수 역의 도경수는 모두 좋은 춤꾼인데, 영화는 이들의 춤을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담아내지는 않습니다. 클라이맥스여야 할 스윙키즈의 마지막 공연도 좀 갑갑하고요. 우린 끝까지 이들의 온전한 춤실력을 볼 수 없습니다. 배우들이 모두 그라임스나 도경수 같은 댄서는 아니니 한계는 있겠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는 일단 댄서들의 존중하고 그 뒤를 따라야 하는데 말이죠.
의외로 뮤지컬보다 성취도가 높은 건 언어를 쓰는 방식입니다. [스윙키즈]는 다언어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드문 한국 영화입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썩 잘 쓰고 있어요. 영화는 배우들에게 억지로 유창한 영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툰 영어, 능숙한 생활 영어, (어떤 때는 의도적인) 오역, 언어 장벽, 자막등을 적절하게 써가면서 상당히 재미있고 종종 감동적인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양판례 역의 박혜수는 굉장히 훌륭한 영어 연기를 하고 있어요. 언어를 빨리 배우고 빨리 써먹는 사람 특유의 특징이 대사에 반영되어 있죠. 결국 허세와 장식에 불과한 발음의 완벽성 따위는 적당히 무시하고 의사 소통이라는 최대 목표에 집중하는 사람의 적당히 얼굴에 철판 깐 태도 같은 거 말입니다.
[스윙키즈]는 흔한 것 같으면서도 드문 영화입니다. 한국영화 특유의 소재를 담고 있지만 이를 아주 고전적인 뮤지컬의 틀에 넣어 진부함을 극복하려 한 작품이며 그 결과물은 어느 기준으로 보아도 신선합니다. 그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가진 뮤지컬에 대한 욕심이 아쉽습니다. 꼭 지금의 충무로 뮤지컬을 [스윙타임]이나 [싱잉 인 더 레인]과 같은 과거 할리우드 고전의 기준에 맞추어 볼 필요는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렇다고 조금 더 장르에 도전적이 될 수는 없었던 걸까요?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