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애니메이션, 액션
개봉일 : 2018-12-12
감독 : 밥 퍼시케티, 피터 램지, 로드니 로스맨
출연 : 샤메익 무어, 헤일리 스테일펠드, 니콜라스 케이지, 제이크 존슨 등
등급 : 12세 관람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첫 예고편이 나왔을 때를 기억하시려나요. 다들 이게 뭔가했을 거예요. MCU에 들어간 첫 번째 [스파이더맨] 영화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 나온 뒤였죠. 저도 이게 어떻게 정리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건 이 계획이 2014년부터 진행되었고, MCU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상관없이 앞으로 이 시리즈가 계속 나올 것이라는 것, 그리고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최근 10여년 동안 나온 미국 코믹북 슈퍼히어로 영화 중 최고라는 것이죠.
왜 이 영화가 이렇게 좋은 걸까요? 그건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요새 유행인 슈퍼히어로 유니버스 영화들과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요새 슈퍼히어로 영화들은 다양한 스타일과 다양한 개성,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캐릭터들을 모두 하나의 유니버스에 넣어버립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다른 톤으로 시작해도 결국 모든 영화들이 비슷비슷해져버리죠. 하나의 그럴싸한 유니버스(물론 그게 진짜 그럴싸해지는 것도 불가능합니다)에 통합시키다보니 따로따로 있을 때는 가능했던 것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고 고만고만한 단계에서 멈추어 서게 됩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정반대입니다. 영화는 어느 슈퍼히어로와도 섞이지 않은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MCU와는 정반대로, 각각 조금씩 다른 스파이더맨의 변주들이 각각의 유니버스에 존재하는 멀티버스를 소개합니다. 이들 유니버스는 모두 독립된 코믹북에 바탕을 두고 있고, 영화는 이들이 하나의 유니버스에 들어온 뒤에도 각각의 스타일을 버리지 않습니다. MCU의 영화가 모두 하나의 맛으로 수렴된다면,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하나의 캐릭터와 유니버스가 수많은 개성과 스타일을 만들어내며 발산해요.
이야기는 슈퍼히어로 기원담입니다. 우리가 아는 오리지널 피터 파커가 죽고 라틴계 흑인인 십대 남자아이 마일즈 모랄레스가 그 뒤를 이어 새 스파이더맨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죠. 단지 악당 킹핀이 피터 파커가 죽기 전 멀티버스의 문을 열었기 때문에 다른 유니버스, 그러니까 다른 코믹북에 있던 나이 든 피터 파커, 그웬 스테파니, 페니 파커, 스파이더 누아르, 스파이더 햄과 같은 캐릭터들이 마일즈 모랄레스의 유니버스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코믹북 이벤트에 바탕을 둔 이 아이디어가 엄청 신선한가? 이를 통해 코믹북 슈퍼히어로 이야기의 무난함이 극복되었는가? 아뇨. 아이디어나 이야기가 아주 새롭다고는 말을 못하겠습니다. 중요한 건 영화가 이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틀에 근사하게 이식했다는 것이죠. 영화는 그럴싸함을 버리고 스타일의 다양성을 포용하며 이들을 충돌을 통해 현란한 스펙터클과 드라마와 액션을 만들어냅니다.
영화는 종종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폭주합니다. 사실적이 될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굳이 영화적이 될 생각도 없습니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시각적 원천인 코믹북의 스타일을 받아들이죠. 말풍선이 나오는 건 당연하고 화면 구성이나 캐릭터 이미지의 망점 같은 것들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도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처럼 프레임수까지 줄였어요. 각본도 이들이 코믹북 유니버스 안에 있다는 걸 은근슬쩍 알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자기반영적 농담을 잔뜩 품고 있습니다.
이러면 그냥 농담으로 끝날 수도 있을 것도 같은데, 의외로 영화의 드라마는 웬만한 MCU 영화들보다 더 진지합니다. 더 진지하게 죽음을 다루고 더 진지하게 슈퍼히어로의 고민을 다루고 더 진지하게 이들을 스토리 안에 봉합하고 있어요. 이건 이들이 코믹북 스타일 안에서만 최대한의 가능성을 표출할 수 있는 캐릭터들에게 가장 편안한 환경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이건 액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CG로 그럴싸하게 처리한다고 해도 실사가 못하는 영역이 있거든요.
영화의 또다른 장점은 10년 가까이 백인남자들의 독점을 당연시하다가 요새야 간신히 다양성의 간을 보는 다른 동네와는 달리 처음부터 뉴욕 시티를 이루는 다양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완전히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닙니다만 시리즈가 진행된다면 이는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겠지요.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