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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곡성

   개요   :  공포, 미스터리

   개봉일   :  2018-11-08

   감독   :  유영선

   출연   :  서영희, 손나은, 이태리, 박민지

   등급   :  15세 관람가



이혁수의 1986년작 [여곡성]은 걸작까지는 아니었지만 한국 호러영화 역사에 무시할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아주 재미있는 영화였지요.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것이 좋은 계획이었느냐? 글쎄요. 일단 그 영화는 굉장히 80년대스러운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재미 상당부분이 당시 좀 미친 것 같았던 싸구려 한국 영화의 특성과 연결되어 있었지요. 그리고 그냥 어쩌다가 나온 영화입니다. 이혁수가 대단한 호러장르 전문가였던 것도 아니고. 이런 영화의 성공을 재현하는 건 아주 어려워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리메이크 영화가 나왔습니다. 감독은 극저예산이었지만 꽤 재미있는 영화였던 박주희 배우 주연의 [마녀]를 감독한 유영선이었고요. 각본 작업까지 포함하면 이혁수보다 더 장르 전문가라고 할 수 사람인데... 음, 그래도 결과물은 매우 안 좋았습니다. 좋은 [여곡성] 리메이크를 만드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이번 영화는 나빴어요. 

리메이크 영화의 기본 스토리는 원작과 같습니다. 옥분이라는 가난한 여자가 양반집에 막내 며느리로 팔려옵니다. 하지만 그 집안은 시아버지의 아기를 임신했다가 살해당한 월아의 저주를 받은 곳이죠. 아들들은 다 죽어나가고 시아버지는 미쳐서 곳간에 갇혀있고. 막내 아들의 아기를 임신한 옥분은 곧 월아의 다음 타겟이 되고요. 중반 이후 시어머니가 월아의 귀신에 씌였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런데 리메이크는 원작에서 재미있었던 부분들을 거의 사보타지 수준으로 제거해버렸습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시어머니의 캐스팅이에요. 서영희는 좋은 배우이고 장르물의 경력도 풍부하며 이 영화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곡성]에서 시어머니가 재미있었던 이유는 뭐였나요? 젊은 여자의 귀신이 들어간 나이 많은 여자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그로테스크함 때문이 아니었나요. 그런데 이 영화는 서영희를 캐스팅하면서 나이 든 여자 자체를 쫓아내 버렸습니다. 시어머니를 포함해서 오로지 예쁜 한복을 입은 젊고 예쁜 여자들만 나오는 영화가 되었단 말이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못생길 생각이 없습니다. 당연히 닭피 빠는 시어머니나, 지렁이 국수를 먹는 시아버지 같은 유명한 장면을 재현해도 재미가 없어요. 원작의 천박한 재미가 그냥 날아가버리니까요. 당연히 손나은이 연기한 옥분도 레이저 광선을 안 쏩니다. 卍자 레이저가 안 나오는 영화가 어떻게 [여곡성]이라는 제목을 달 수 있는 건지요. 

새로 더한 것들은 대부분 영화의 재미를 망쳐놓습니다. 가장 나쁜 건 박수무당 해천비입니다. 원작의 재료를 밋밋하게 만든 것으로 모자라 무협지에서 튀어나온 거 같은 '멋진 남자 주인공'을 만들어 박아놓은 것이죠. 이런 걸 보고 요새 사람들은 '넌 (비속어) 눈치도 없냐'라고 하지요. 눈치없기도 하지만 계속 호러와 서스펜스를 분산시켜 그나마 남아있을 수도 있는 재미를 꾸준히 망쳐놓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새로 짠 시어머니와 옥분의 대결도 맥이 풀려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레이저 광선이 안 나오는... 그만 하죠. 

장르 애호가가 고전 재료를 건드렸다가 망친 건 전에도 봤습니다. 김지환의 [전설의 고향]요. [여곡성] 리메이크가 저지른 실수 대부분은 [전설의 고향]이 저지른 것입니다. 그리고 원래 소스가 왜 재미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덤볐다가 갈팡질팡하는 걸 보는 건 한 번으로 족해요.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