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액션, 어드벤처, SF, 스릴러
개봉일 : 2015-07-02
감독 : 앨런 테일러
출연 : 아놀드 슈왈제네거, 제이슨 클락, 에밀리아 클라크, 제이 코트니, J.K. 시몬스, 다요 오케니이, 맷 스미스
등급 : 15세 이상
전 [터미네이터]의 3, 4편에 대해 그렇게 박한 편이 아닙니다. 1, 2편이 그렇게 준수하게 나왔으니 따라잡기 힘든 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그 핸디캡을 고려하면 3편은 비교적 잘 나온 편이고 4편도 소문만큼 망작은 아니었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까지 망작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생각이 잘 안 나요.
제가 속편들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건 시리즈 자체에 별 기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들 대표작으로 뽑고 있는 2편부터 잉여, 그러니까 시리즈 전체가 잉여죠. [터미네이터]는 속편이 필요없는 영화였습니다. 마지막 단 하나의 기회에 양쪽 모두가 운명을 건 전투를 그리고 있었고 이를 통해 완벽한 순환구조가 이루어졌죠. 여기에 뭔가를 더하는 건 쓸데없는 짓입니다. 결말의 여운도 까먹을 수밖에 없고요. 다시 말해 오리지널의 여운을 까먹기 시작한 건 2편부터이니 전 속편들을 처음부터 조금 포기한 상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그래서 더 관대한 것인지도. (그렇다고 2편이 나쁜 영화란 건 아니고요. 좋은 영화 맞아요. 단지 꼭 필요한 속편은 아니었다는 거죠.)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시리즈의 5편입니다. 이 시리즈의 흐름 안에 [사라 코너 연대기]가 포함되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상관없겠죠. 이 영화의 시공간 무대는 스카이넷이 타임머신을 발명한 뒤 갈라진 수많은 평행우주의 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을 테니까요. 1편의 흐름에서 그렇게 잘 이어지지도 않아요. 예를 들어 사라 코너의 사진은 불타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살아남았죠.
하여간 1편에서처럼 존 코너는 카일 리스를 과거로 보내는데, 1편과는 달리 80년대의 사라 코너는 '팝스'라는 별명의 터미네이터의 보호를 받으며 이미 전사로 자라났단 말이죠. 1편의 T-800과 2편의 T-1000이 우리의 주인공들을 공격하지만 모두 초반에 제압당하고, 이들은 카일 리스의 평행우주 기억을 따라 2017년의 미래로 갑니다. 거기서는 제니시스라는 이름의 새로운 세대의 스카이넷이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고요. 더 나쁜 소식은 이들을 돕고 있는 게 카일 리스가 과거로 가기 직전에 스카이넷에 통합된 존 코너였다는 거죠.
척 봐도 팬픽션 같은 영화입니다. 아니, 그보다 가벼워요. 시리즈 1, 2편의 재료들이 특별한 감흥없이 놀이터에서 액션 피겨 갖고 노는 아이들의 상상 드라마처럼 마구 던져지고 부서지고 재조립되고 다시 부서지고 아까와는 다른 모양으로 조립됩니다. 그러는 동안 인류의 운명을 건 거대한 전쟁이라는 소재의 무게는 그냥 날아가버리죠. 작품마다 계속 다른 성격의 다른 캐릭터로 나왔던 존 코너는 이 영화에서 그냥 개박살나고요. 그러면서 은근슬쩍 속편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니 텔레비전 시리즈 파일럿처럼 보이기도 하죠. 여기엔 분명 놀이의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팬들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어요. 팬픽션 작가라도 자신이 소재를 끌어쓰는 우주가 이보다는 더 진지하길 바랄 테니까요. 일반 관객들을 자극하기엔 너무 기성품이고요. 1, 2편이 라이브 공연 같다면 5편은 좀 노래방 반주스러워요.
SF 액션물로서, 영화는 2편 이후 속편들이 시달렸던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T-1000이 워낙 첨단이라, 아무리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으로 멋지게 뽑아도 기술적으로는 다운그레이드된 것처럼 보인다는 거죠. 1, 2편보다는 당연히 기술적으로 발전했지만, 당시 맨몸으로 기술의 첨단에 도전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인상은 무난한 편입니다. [쥬라기 월드]의 특수효과가 [쥬라기 공원]의 특수효과보다 덜 재미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물론 액션 연출 자체의 질 문제도 있습니다. 날씬하게 뽑았지만 개성과 힘이 떨어져요. 새 스카이넷 캐릭터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얼굴없이 음산한 이름만 나오는 존재가 갑자기 대화가 가능한 인격체가 되었어요. 전 좀 맥이 풀리지만 이 캐릭터의 효용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겠죠.
이 영화에 악평을 하는 사람들은 오리지널의 기억을 망쳤네, 어쨌네 하면서 투덜거리는 모양인데, 굳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지요. 어차피 나오는 속편마다 전편의 설정을 파괴했던 시리즈예요. 굳이 연결된 이야기로 생각하지 말고 좋아하는 영화들만 챙기시라고요.
★★☆
기타등등
이 영화의 터미네이터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나이를 먹는다는 설정인데, 그럴 수도 있겠죠. 기계는 망가지기 마련이고 덮고 있는 피부도 늙을 수밖에 없으니까. 영원히 그대로인 로봇 자체가 판타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