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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맨

   개요   :  SF, 드라마

   개봉일   :  2018-10-18

   감독   :  데이미언 셔젤

   출연   :  라이언 고슬링, 클레어 포이

   등급   :  12세 관람가



데이미안 셔젤의 [퍼스트 맨]은 도저히 재미있을 거 같지 않은 소재로 만든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그 소재는 다름 아닌 닐 암스트롱.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20세기인이죠. 달에 첫 발을 디딘 사람. 근데 이 사람에게 영화 한 편을 채울 이야기가 있었던가요? 아니,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긴 했나요? 콜롬부스나 마젤란은 탐험의 주체였습니다. 당연히 이야기의 주인공 자격이 있죠. 하지만 아폴로 계획에서 암스트롱은 그냥 선발된 엘리트였습니다. 암스트롱이 없었다고 해도 누군가는 달에 갔겠죠. 이름만 바뀌었을 뿐 역사는 그대로였을 겁니다. 지금까지 나온 나사 소재 영화나 드라마가 개인보다 집단에 치중하고 있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나왔습니다. 원작이 된 닐 암스트롱 전기가 생각보다 재미있는 책이었나?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퍼스트 맨]이라는 영화가 의외로 재미있다는 것이죠. 우주 탐사 덕후들이라면 다들 알 법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그 재미의 절반 이상은 닐 암스트롱의 이야기를 한다는 다소 지루해보이는 목표와 연결되어 있는 거 같아요. 적어도 그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나사 영화와 상당히 다른 작품이 나왔습니다. 

암스트롱이 생각보다 재미있는 사람이었냐고요? 아닙니다. 여전히 이 사람은 좀 지루한 모범생이에요. 공부도 잘 하고 일도 잘 하고 집중력도 엄청난 백인 남자. 그러니까 비슷한 부류의 전문가 중 탑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 병으로 죽은 어린 딸에 대한 기억을 제외하면 별 드라마가 없습니다. 달탐사선 선장 자리를 맡기면 안심이 되겠지만 이야기 주인공으로는 별 재미가 없어요. 

하지만 영화는 암스트롱이 별다른 개성이 없는 인물이라는 걸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체라기보다는 관객들이 달착륙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돕는 일종의 그릇이에요. 엄청난 스펙터클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우주비행이라는 임무도 대부분 암스트롱의 눈에 맞추어 보여주는데, 그 때문에 종종 VR 게임을 보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아이맥스 카메라로 찍은 달착륙 장면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이건 스펙터클보다는 체험을 위한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적인 드라마가 날아간 건 아닙니다. 단지 여기엔 약간의 트릭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닐 암스트롱은 극도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인데, 영화는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별다른 것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 억압된 상태가 캐릭터에 여분의 깊이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요. 그래서 닐 암스트롱의 아내 재닛이 등장합니다. 클레어 포이가 연기하는 재닛은 거의 끝까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라이언 고슬링의 닐 암스트롱의 무표정에 의미를 부여하고 화음을 넣습니다. 

국가주의 예찬으로 흐를 수 있는 백인 남자 영웅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이렇게 보여질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억누르려 하고 있지만 (당연히 넣을 거 같았던 성조기 꽂는 장면도 일부러 빼서 논란이 일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관객들이 그 틀을 통해 영화를 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