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액션, 어드벤처, SF, 스릴러
개봉일 : 2015-06-11
감독 : 콜린 트레보로우
출연 : 크리스 프랫 ,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 빈센트 도노프리오 , 타이 심킨스 , 닉 로빈슨
등급 : 12세 이상
[쥬라기 월드]는 [쥬라기 공원]의 속편입니다. 단순한 설명처럼 들리지만 의외로 까다롭죠. 이 세계에서 2, 3편은 존재하는 걸까요? 2, 3편의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과연 쥬라기 월드와 같은 테마 파크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감독 콜린 트레보로우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이에 대한 깊은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냥 1편에 집중하고 2, 3편은 생각하지 않으려 한 거 같아요. 덕택에 2, 3편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유령과 같은 역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태도는 [쥬라기 월드]가 어떤 영화인지 보여주죠. 깊은 고민이 없어요.
하여간 쥬라기 월드는 몇 년 째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사람들은 공룡에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원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하이브리드 공룡을 만듭니다. 흠... 근데 원래 쥬라기 월드에 있는 공룡들은 다 하이브리드가 아니던가요? (공원의 벨로시랩터가 하이브리드가 아니라면 깃털은 다 어디에 있어요?) 하여간 하이브리드 공룡 인도미누스 렉스는 예상했던 것처럼 울타리를 탈출하고 연달아 끔찍한 연쇄작용을 일으켜 공원은 난장판이 됩니다. 이 난장판에 벨로시랩터를 무기로 이용하려는 인젠사의 악당까지 끼어들죠. 이에 맞서는 주인공은 벨로시랩터를 훈련하는 일을 하는 전직 군인인 오웬과 회사직원인 클레어입니다. 어쩌다보니 이모랑 놀러 온 클레어의 두 조카도 이들과 개고생을 함께 하고요.
오리지널 3부작과는 달리 그렇게 과학에 신경을 쓰는 영화는 아닙니다. 별 생각없이 등장한 하이브리드 공룡만 봐도 알 수 있죠. 이전 영화들... 적어도 1편은 고생물학과 유전공학을 다룬 SF로는 최첨단을 달렸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동안 쌓인 지식을 반영할 생각도 없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할 생각도 없습니다. 이 영화의 공룡들은 오로지 괴수로 등장해요. 무시무시하고 재미있는 괴물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종종 지나치게 의인화되어 [고질라] 속편처럼 보이기도 하죠.
그건 인간 캐릭터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리지널 3부작은 모두 과학자들이 주인공이었고 이들의 행동과 액션은 그들의 전문지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모두 전형적인 액션 영웅은 아니었고요. 하지만 이 영화의 오웬은 너무나 익숙한 백인 남성 액션 주인공입니다. 클라크 게이블이 연기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그에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실망스럽죠. 후반엔 나아지지만 초반엔 너무나 전형적인 SF 장르 전문 여자 방해꾼으로 나오는 클레어도 마찬가지. 뻔한 SF 악당으로 나오는 빅 호스킨스 캐릭터에 이르면 그를 연기하는 빈센트 도노프리오가 불쌍해질 지경입니다. SF 영화로서 [쥬라기 공원]은 굉장히 얇아요. 과학보다는 장르 클리셰가 더 강하죠.
그러면서도 속편의 정체성은 의외로 강한 영화입니다. 심지어 오리지널 (인간) 캐릭터가 한 명밖에 안 나오는데도 그래요. [쥬라기 공원]의 무대가 되었던 공간은 꾸준히 재방문되고 액션은 오리지널에서 추출되어 변형됩니다. 노골적으로 향수를 자극하는 윙크도 많은 편. 뻔하지만 이런 식으로 과거의 영화를 재방문하는 경험은 나쁘지 않습니다.
액션물로서 [쥬라기 월드]는 신나고 시끄럽고 잡다합니다. 우리가 공룡 테마 파크에서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을을 보여줘요. 단지 스필버그의 전작들을 생각하면 아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리지널 [쥬라기 공원]엔 의외로 공룡이 많이 안 나왔고 공룡이 나오건 안 나오건 재미있었죠. 우리가 흥분하며 봤던 건 '공룡'이 나오는 영화가 아니라 '공룡이 나오는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콜린 트레보로우는 그냥 기초만 합니다. 이전에 장르 액션물을 하나도 찍어 보지 않은 감독치고는 아주 잘 했지만 이 영화의 액션엔 그런 특별함이 없어요. 그냥 위에서 내려온 숙제를 열심히, 엄청나게 많이 한 영화를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특수효과도 1편이 더 좋았습니다. 물론 이번 영화가 더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공룡들을 보여주죠. 하지만 [쥬라기 공원]은 막 피어오르는 CG, 절정에 도달했던 애니메트로닉스, 멸종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반짝 빛났던 고-모션, 라텍스 분장한 스턴트맨이 총동원되었던 공룡 특수효과의 백과사전이었습니다. [쥬라기 월드]에서는 그냥 '사실적인 CG' 공룡들이 주류를 이루죠. 발전이겠지만 여전히 아쉽군요.
그래서 어땠냐고요? 위에 늘어놓은 불평에도 불구하고 여름 블록버스터로서는 만족스러운 영화였습니다. 투박하고 속 보이는 영화지만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 부분도 있고 캐릭터의 얄팍함은 배우들에 의해 많이 보완되고요. 자꾸 [쥬라기 공원] 이야기를 불러오는 건 그 영화가 그만큼이나 특별한 작품이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런 영화가 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
기타등등
익룡 동물원을 조류동물원이라고 번역하다니. 자막 번역가는 우리를 몇 살로 보고 있는 걸까요.
영화의 화면 비율은 2.0:1입니다. 공룡들의 키를 살리면서 스코프 분위기도 내려고 그랬다더군요. 이전 영화에서 스필버그는 비스타 비율로 충분히 잘 놀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우리나라엔 제대로 마스킹해 상영할 수 있는 극장이 없겠죠. 있어도 귀찮아서 안 할 거고. 전 왕십리 아이맥스 시사회를 봤는데 거기선 레터박스가 거의 안 보이긴 하더군요. 대신 양 옆에 화면 정보 손실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