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액션, SF
개봉일 : 2018-03-28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 마크 라이런스, 사이먼 페그, 올리비아 쿡, 타이 쉐리던, 벤 멘델슨, T.J.밀러
등급 : 12세 관람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레디 플레이어 원]의 원작은 이 영화 각본에도 직접 참여한 어니스트 클라인의 동명소설입니다. X세대 미국 백인 남자 오타쿠의 향수와 소망성취로만 이루어진 이야기입니다. 술술 잘 읽히지만 오글오글해요. 설정은 이렇습니다. 21세기 중반의 미국은 황량한 디스토피아입니다. 빈곤층은 트레일러를 잔뜩 쌓아놓은 아파트에 살고 젊은이들에겐 꿈도 희망도 없습니다. 이들에게 유일한 도피처는 가상현실 놀이터인 오아시스입니다. 그런데 이 놀이터의 발명가 할리데이가 사망하면서 오아시스 여기저기에 숨겨놓은 이스터에그를 모두 찾으면 오아시스를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겨놓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물사냥에 열을 올리지만 그 중 가장 열성적인 건 IOI라는 사악한 회사죠. 이들은 식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사원들을 오아시스에 투입해 몇 년 째 이스터에그 사냥에 몰두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하나도 못 찾았습니다.
주인공인 웨이드 와츠는 트레일러에 사는 가난한 고아인데, 운 좋게도 할리데이가 숨겨놓은 이스터에그를 발견한 첫 번째 사람이 됩니다. 그 덕택에 상금을 타고 유명인사가 되지만, IOI가 자신들의 계획에 위협이 되는 이 친구를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리가 없겠죠. 그런데 웨이드를 노리는 또다른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IOI의 오아시스 독점을 저지하려는 저항세력입니다. 그리고 웨이드는 이들의 리더인 아르테미스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SF 버전입니다. 로알드 달이 과자에 대한 그의 열광과 집착을 소설에 반영했다면, 클라인은 자신이 어렸을 때 좋아했던 8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향수를 소설 재료로 삼았습니다. 이런 소설을 80년대 미국 대중문화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화한 것이죠.
영화는 소설보다 덜 오타쿠스럽습니다. 클라인의 판타지는 아주 구체적으로 특정 세대에 묶여 있습니다. 그와 할리데이의 시대, 그러니까 1980년대죠. 하지만 영화는 그보다 융통성있습니다. [햄릿]에서부터 [오버워치]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넓은 영역을 커버하고 있고 오타쿠스러운 집착도 줄었어요. 어느 정도는 저작권 문제 때문일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보다는 더 넓은 관객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이 영화에서는 오타쿠 집착보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더 중요합니다. 수많은 인용들이 숨어있지만 이야기가 여기에 잡아먹히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 결과물은 유쾌하고 재미있습니다. 새롭거나 깊이 있지도 않고 대단한 야심도 없습니다. 하지만 즐겁고 통쾌하며 관객들의 소망을 아주 적절하게 충족시킵니다. 스필버그가 자신이 반쯤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21세기 SF 블록버스터 관객들을 얼마나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랄까요. 누가 여전히 이건 백인 남자 게임광의 판타지일 뿐이라고 시비를 건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라면, 전 몇 주 전에 본 [더 포스트]가 더 스필버그 영화스러웠습니다. 허겁지겁 만든 소품이지만 그 영화가 스필버그의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시네마'의 느낌이 더 강했지요. 이 영화는 '시네마'보다는 게임적인 성격이 더 강합니다. 오아시스 장면 대부분이 CG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 [틴틴]에서도 보았지만 스필버그는 이 영역에 들어가면 좀 과잉흥분하는 경향이 있어서. 하지만 게임이 영화의 소재라면 이런 접근법도 나쁘지는 않죠. 그리고 영화는 최종보스를 만나 미친 듯 버튼을 눌러대는 게임 특유의 흥분을 영화적 클라이막스와 적절하게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10년만에 나온 스필버그 SF입니다. 그는 요새 미국 역사에 더 관심을 쏟고 있어서 그의 다음 SF 영화를 만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역사 영화들을 좋아하고 중간에 [마이 리틀 자이언트]와 같은 빼어난 판타지 영화도 한 편 나왔으니 별 유감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좀 감질나네요.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