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액션, 드라마
개봉일 : 2017-07-20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 핀 화이트헤드, 마크 라이런스, 톰 하디
등급 : 12세 관람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는 그가 처음으로 만든 실화소재의 영화인데요. 1940년 5월과 6월 사이에 있었던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놀런 이전에 조 라이트가 [어톤먼트]에서 같은 배경으로 무시무시한 롱테이크를 찍어낸 적 있죠. 하여간 엄청난 전쟁 액션을 기대하고 보시면 곤란합니다. 이건 도망의 기록이거든요. 독일군에 쫓기던 30만명이 넘는 연합군이 거의 맨몸으로 달아나는 이야기. 세계역사에 기록될 성공적인 철수작전이었지만 굴욕적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요.
영화를 보기 전에 전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6,70년대 대하전쟁영화와 비슷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어요. 일단 러닝타임이 짧죠. 엔드 크레디트까지 포함해서 1시간 50분도 안 되니까. 이런 상황으로 연합군을 몰고 간 사정 같은 건 하나도 안 나옵니다.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둔 허구의 인물이고요. 그러니까 대충 역사공부를 하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했는데, 영화의 구조는 아닙니다. 일단 적응하면 큰 문제가 안 되기는 하는데, 초반 설명에 집중하지 않으면 좀 헛갈릴 수가 있어요. 영화는 세 개의 시간선을 따라 전개됩니다. 첫번째 시간선은 어떻게 해서든 덩케르크를 떠나 영국으로 달아가려는 토미(이건 이름도 아니죠. 영화 속에서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도 않습니다)라는 영국군이 겪는 일주일을 다룹니다. 두번째 시간선에서는 덩케르크 철수작전에 징발된 작은 배의 주인인 도슨이라는 민간인이 주인공인데 그가 겪는 하루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세번째 시간선에서는 철수작전을 지원하려 출격한 스핏파이어 전투기의 파일럿인 패리어가 겪는 한 시간을 다루고요. 이들의 이야기는 따로 놀다가 각 시간선이 수렴되는 후반부에 하나로 합쳐집니다. 초반에 자막으로 설명이 되긴 하는데, 그래도 좀 예외적인 구성이라 여전히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덩케르크]는 용감함과 비겁함의 기록입니다. 그렇다고 이 둘을 나란히 놓고 비겁함을 비난하는 영화라는 건 아닙니다. 놀란은 겁먹고 달아나는 평범한 병사들을 비난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반대로 백퍼센트 감정이입하며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공포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려 하죠. 첫번째 시간선의 이야기는 굉장히 넓은 감정과 상황을 커버하는데, 여기에는 허탈한 웃음도 포함됩니다. 토미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동원하는 온갖 술수와 꼼수들이 연달아 참혹하게 실패하는 과정은 오싹하면서도 비극적인 코미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두번째 시간선은 비겁함과 용감함이 선명하게 충돌합니다. 철수작전에 참여하는 도슨은 용감한 영국 민간인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고 영화 내내 그런 사람들이 할 법한 행동과 말만 합니다. 하지만 그가 배에서 구조한 이름없는 병사는 자기가 탄 배가 프랑스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에 기겁하고 이성을 잃습니다. 이 시간선은 당연히 당시 철수작전에 참여했던 도슨과 같은 민간인들에 대한 예찬이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겁먹은 병사를 비난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단 도슨 자신이 그 공포를 이해하고 있죠. 도슨의 과거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정보만 주어질 뿐이지만 그래도 들어보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혐이 있을 것 같고, 자신의 한계를 본 용감한 사람들은 대부분 공포에 떠는 사람들도 더 잘 이해하는 게 아닐까요.
세번째 시간선에서 갈등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시간선의 주인공은 노련하고 용감한 전문가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만을 합니다. 가장 전쟁영화 같은 액션이 벌어지는 것도 이 부분입니다. 이 시간선의 이야기는 스핏파이어 전투기에 대한 연애시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덩케르크 전투에서 기대할 수 있는 공중전의 상황이 거의 모두 나올 뿐만 아니라, 파일럿과 전투기의 관계가 담담하지만 절절하게 그려집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에서 가장 관계 묘사가 뛰어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시간선의 잔재주를 제외하면 고풍스럽고 전통적인 영화입니다. 캐릭터 묘사 같은 것보다는 큰 사건에 집중하고, 냉소주의나 변명없이 중요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죠. 아, 그리고 무지 영국예찬적인 영화이기도 하답니다. 거의 전적으로 영국 시점에서 전개되는 영화이기도 하고. 독일군이 거의 안 나오는 건 이해가 되지만 전 프랑스 시점이 조금 더 들어갔으면 했습니다. 아무래도 구멍이 좀 보인단 말이죠.
아이맥스로 보시면 가장 좋을 영화입니다. 그것도 레이저 상영이 가능한 곳. 전 왕십리에서 봤지만 그럴 거 같아요. 놀란의 최근 영화들이 그렇듯 계속 화면비가 변하는데 1.4 화면을 지원하는 곳이 그런 곳들 뿐이죠. 단지 전 이 화면비 장난이 좀 지겹습니다. 아이맥스 촬영분이 그리 많지 않았던 [다크 나이트] 때와는 달리 [덩케르크]는 대부분 장면이 아이맥스예요. 여기에 가끔 끼어드는 와이드스크린 장면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반 상영 때는 레터박스가 들어간 2.20 화면비로 튼다는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고.
컨텐츠 제공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