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액션, SF
개봉일 : 2017-03-01
감독 : 제임스 맨골드
출연 : 휴 잭맨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최근 몇 달 동안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 리뷰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영화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다들 비슷비슷해서 비슷비슷한 말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지치더라고요. 특히 수퍼히어로들을 갖고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만들려는 시도는 지겹기 그지 없었어요. 어떤 소재와 캐릭터를 가져와도 다 고만고만한 영화를 만들어버리니까요.
하지만 제임스 맨골드의 [로건]은 예외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엑스맨], [울버린] 영화들을 보면 울버린 캐릭터로 만들 수 있는 영화의 상한선이 있을 것 같은데, 이 영화는 가뿐하게 그 선을 넘어버렸어요.
영화는 엄청난 대청소로 시작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도 돌연변이 대부분이 죽었고 새로운 돌연변이도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그재비어 교수는 치매를 앓고 있고 왕년의 능력을 많이 잃어버린 로건/울버린은 우버 운전사 일을 하면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지요.
너무 과격해서 과연 이 세계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엑스맨] 우주에 속하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전 아직도 모르겠어요. 이 영화에서 [엑스맨] 코믹북은 실제 인물과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바탕을 둔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영화도 마찬가지일 수 있지 않을까요? 로건과 이그재비어 교수는 모두 이전 영화들이 바탕을 두고 있는 보다 어둡고 초라한 세계를 살고 있는 어둡고 초라한 사람들일 수도 있는 겁니다.
이러니 이전 [엑스맨] 영화의 고만고만함은 시작부터 순식간에 사라져버립니다. 앞의 영화들에 끌려가지 않고, 수퍼히어로 영화의 관습에 의존하지도 않으면서 멋대로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죠.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굳이 이전 [엑스맨] 영화를 볼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전 원작 코믹북만 읽고 시리즈 영화를 한 편도 안 본 독자가 가장 이상적인 관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로건의 임무는 멕시코에서 만난 돌연변이 소녀 로라를 북쪽에 있는 약속의 땅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로라는 알고 봤더니 로건의 유전자를 통해 만들어진 그의 딸과 같은 존재이고 그의 능력도 갖고 있죠. 여기서부터 영화는 서부영화의 분위기를 풍기는 로드 무비가 되지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생각나기도 하고 후반부엔 [매드 맥스: 썬더돔] 분위기도 조금 풍깁니다. 직접 인용되는 [셰인]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없겠지요.
영화의 폭력 수위는 상당히 높습니다. 이 시리즈 최초의 R등급 영화거든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가차없는 폭력은 나이 든 로건이 아닌 아직 쌩쌩한 야수 같은 로라의 몫입니다. 이 아이가 금속 손톱으로 자기 몸의 몇 배는 되는 어른들의 숨통을 끊어놓는 걸 보면 속이 후련해집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어른 영화스러움은 폭력이 아니라 나이듦과 소멸에 대한 가차없는 묘사에서 나옵니다. 이 때문에 영화가 더 아련해지는 것일 수도 있어요. 지금까지 로건과 [엑스맨] 우주는 이런 것이 없는 척하는 세계에 속해있었으니까요. 그 세계 자체가 이 영화와 함께 몰락하는 건데, 이 정도면 거의 [신들의 황혼]인 것이죠.
여전히 한계는 있습니다. 닥터 라이스는 그렇게 재미있는 악당이 아니고 그의 음모도 코믹북 클리셰 안에 속해 있습니다. 이 영화도 결국 새로 시작되는 코믹북 슈퍼히어로물의 프리퀄 역할을 하겠죠. 이렇게 멋지게 문을 열었으니 로라 키니/X-23가 주인공인 영화가 안 나오면 신기할 테니까요. 하지만 앞으로 시리즈가 어느 방향으로 가건 [로건]은 다른 영화들이 쉽게 넘어설 수 없는 빛나는 순간으로 오래 남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10여년 동안 사랑받았던 캐릭터를 위한 완벽한 피날레로 기억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