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범죄, 드라마
개봉일 : 2017-01-18
감독 : 한재림
출연 : 조인성, 정우성, 배성우
등급 : 15세 관람가
한재림의 [더 킹]은 소위 정치검사들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박태수는 이들을 어느 정도 대표하는 인물이죠. 전라도 시골 마을 쌈짱이었다가 어쩌다 검사가 된 그는 한강식을 만나 권력의 핵심 라인을 타게 되는데, 그 과정이 전두환 정권 시절부터 이명박 정권까지의 20여년의 긴 시간대를 커버합니다.
스콜세지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친구들]이나 [카지노],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어두운 세계의 규칙을 따르며 승승장구하는 남자를 통해 그 세계를 인류학적으로 들여다보는 영화요. 그러는 동안 적극적인 스타일의 모방도 시도한 것 같은데, 한재림의 전작에 비해 꽤 컬러풀한 편이거든요.
단지 스콜세지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못난 부분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콜세지는 아무리 주인공의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깔아도 이들에 동조하지 않고 단호하기 짝이 없죠. 하지만 [더 킹]은 영화 속 인물들을 조롱하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여전히 물렁물렁합니다.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박태수라는 주인공을 다루는 방식에 있죠. 나름 터프한 환경에서 자란 척 하는 인물인데, 들여다보면 영화가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부잣집 외동아들을 다루는 것 같습니다. 동네 깡패여서 주변 깡패들을 두들겨패고 다녔는데, 알고 봤더니 공부가 체질이어서 서울대에 갔고, 사법고시도 단번에 붙었고, 생긴 건 조인성인데, 어쩌다가 김아중을 만나서 결혼하고, 어쩌다보니 라인을 여러 겹으로 잘 타서... 이런 걸 보고 우쭈쭈쭈한다고 합니다. 그는 아무리 나쁜 일을 해도 심각한 일은 안 겪고, 아무리 험한 일을 당해도 심하게 손해를 안 봅니다. 이게 캐릭터 연구라면 그러려니하겠지만 아니에요. 순전히 이야기꾼이 맘이 약해서 나쁜 일은 웬만하면 미리 알아서 치워주어서 그렇거든요.
영화는 충분히 사실적인 세계를 그리는 데에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야기를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일차소스를 재료로 썼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영화가 그리는 그들만의 세계는 딱 우리가 '그들만의 세계'를 상상하는 수준입니다. 디테일이 약하고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정보는 없죠. 당연히 이들에 대한 조롱도 피상적입니다.
[더 킹]은 자신이 아주 위험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이미 꾸준히 여러 매체를 통해 나왔고 지금 위험을 느껴야 한다면 그건 우리가 말도 안되는 정권 밑에 있다는 단 하나뿐이죠. 영화는 조롱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싸나이들로만 이루어진 이들 세계에 늘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에서 조인성을 캐스팅한 것부터가 문제죠. 조인성은 알리바이 용 캐릭터거든요. 어떤 역할로 나와도 어설프고 귀여워서 우쭈쭈쭈. 결코 레이 리오타가 될 수 없죠. [더 킹]이 결코 [좋은 친구들]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차라리 김소진이 연기한 안희연 검사가 주인공이었다면 영화가 요새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싸나이 영화들에서 차별화되는 관점을 제공해주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겠죠. 적당히 사회비판하는 척하면서 아저씨 관객들을 긁어주는 영화들이 훨씬 잘 팔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