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범죄, 스릴러
개봉일 : 2015-05-14
감독 : 백운학
출연 : 손현주, 마동석, 최다니엘, 박서준, 정원중
등급 : 15세 관람가
특급 승진을 앞둔 최반장은 부하들과 회식을 끝내고 택시를 탑니다. 하지만 택시 운전사는 그를 산으로 끌고 가 칼로 찔러 죽이려 하죠. 최반장은 정당방위로 그를 살해하지만 승진에 방해가 될까봐 신고하지 않고 조용히 현장에서 빠져나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그가 죽인 시체가 경찰서 앞 공사장 크레인에 떡 매달려 있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수사하게 된 최반장은...
어, 비슷한 영화를 작년에 봤습니다. [끝까지 간다]요. 적당히 부패한 형사가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악하는 이야기. 하긴 영화 속 부패형사가 겪을 수 있는 곤경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끝까지 간다]는 영리하고 좋은 영화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재료를 총동원해서 끝날 때까지 재미를 잃지 않았죠. 백운학의 [악의 연대기]에는 그런 치밀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에 기반을 둔 쓸데 없는 반전에 목을 매느라 드라마와 스릴러가 망가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최반장의 이야기에만 집중해도 진부함을 벗어나기가 힘든데, 이렇게 사연 있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다보니 각본이 덜컹거립니다. 이야기가 복잡하거나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 영화의 플롯이 감당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닌 거죠. 반전에 무게가 쏠리다보니 최반장이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냥 이야기에 끌려다니는 것 이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죠.
기반이 되는 이야기도 헐거운데, 영화는 이 이야기에 지나치게 많은 디테일을 양보하고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죠. 며칠의 간격을 두고 전직형사들이 살해당했고 이들은 모두 주인공과 아는 사이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연쇄살인을 염두에 두고 수사가 진행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요?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화의 반전을 이루는 트릭도 설득력 없는 우연의 일치에 기반을 두고 있고요. 이런 구멍이 한둘이 아니에요.
무엇보다 대사나 연기지도가 건성입니다. 정말 영혼없는 관습적인 연기가 줄을 이어요. 분노한 주인공이 컴퓨터 모니터를 비롯한 책상의 물건들을 쓸어버리고 고함을 지른다거나, 옥상에서 독백을 하면서 헛웃음을 짓는다거나. 그리고 반전을 숨기고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거짓 연기를 하고 있어요. 대사에 대해서 말하라면... 제가 종종 이야기하는 거 있잖아요. 요새 영화에서 중산층 유부녀가 남편에게 존대를 한다면 그 작가는 관습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라고. 이 영화가 그 증거입니다.
전 점점 손현주가 걱정이 되더군요. [숨바꼭질] 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 영화 역시 김명민 영화의 길을 따르고 있어요. 연기력 좋은 배우가 '다들 능력있는 전문가라지만 이상할 정도로 머리가 나쁜' 중년 남자 역을 맡아 영화 내내 고함을 지르며 방항하는 장르물말입니다. 왜 한국 장르 영화 작가들은 이런 사람들을 그렇게 편애하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