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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Macbeth)

   개요   :  드라마

   개봉일   :  2015-12-03

   감독   :  저스틴 커젤

   출연   :  마이클 패스벤더, 마리옹 꼬띠아르

   등급   :  15세 이상



대부분의 셰익스피어 영화들이 그렇듯, 저스틴 커젤의 [맥베스]도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바꾸지 않습니다. 요새 나오는 셰익스피어 영화들과는 달리 시대착오적인 의상이나 배경을 시도하지 않고요. 이 정도면 원작에 충실한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원래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고증과는 담을 쌓은 작품들입니다. 그런 거 지키지 않아도 얼마든지 '정통 셰익스피어' 영화를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커젤의 [맥베스] 해석은 정통에서 꽤 떨어져 있습니다. 대사는 고수하고 있지만 내용이나 주제는 많이 달라요.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스토리의 명료함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완벽한 작품을 쓴 적이 없어요. 늘 정신없고 헛갈리고 오락가락한 작품들을 썼죠. 완벽한 작품은 이웃 동네 프랑스 사람들이 썼습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지금까지 사랑받는 생생한 작가로 남아있는 건 그 다양한 해석을 낳고 감정이입이 사방으로 튀는 정신없음이거든요. 하지만 커젤의 각색은 이 혼란스러움을 싹 정리했습니다. 제3의 자객도 없고 이름 없는 노인도 없어요. 그 때문에 원작보다 훨씬 작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 되었죠.

그 이야기는 무엇이냐. 이게 좀 재미있습니다. 일단 오프닝을 보시겠어요? 영화는 원작에서는 모호하게 처리한 맥베스 부부의 아이들 이야기로 시작해요. 어린 아이 하나는 병으로 죽은 것 같고, 나이가 꽤 되는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이 장면을 본 다음에 레이디 맥베스의 '언섹스 미' 대사를 들으면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여기서 레이디 맥베스는 사리사욕을 위해 살인 준비를 하는 게 아니라 상처받은 어머니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여성성을 죽이는 것이죠.

세 마녀도 이상한데, 원작에서처럼 맥베스의 운명을 좌우하는 잔인무도한 운명의 힘이라는 느낌이 없어요. 왜인지 모르게 방관자처럼 보이고 생기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말없는 소녀를 한 명 데리고 다녀요. 세 마녀가 아니라 네 마녀인 것이죠. 이들을 어떻게 보느냐는 각자의 자유겠지만 전 이들이 유령이라고, 정확히 말하면 전쟁 피해자의 유령이라고 봤습니다.

이렇게 해석하고 나면 뒤는 더 신기해져요. 이 영화에서 맥더프의 아내와 아이들은 그냥 자객에 의해 살해당하는 게 아니라 맥베스에 의해 공개처형당합니다. 그것도 그냥 목이 잘리거나 교수형에 처해지는 게 아니라 화형을 당해요. 그리고 우리는 이 장면에서 레이디 맥베스가 처음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걸 봅니다. 죄책감의 원인이 덩컨 왕의 죽음이 아니라 고통 받는 여자와 아이들의 모습인 거죠.

그 뒤에 레이디 맥베스는 몽유병에 걸려 악몽에 시달리는 대신 교회에서 멀쩡하고 차가운 정신으로 독백을 읊고 교회를 나서면서 세 마녀와 만나는데, 이건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가장 먼 해석이라고 할 수 있죠. 이건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 커젤의 영화가 셰익스피어의 양성 상징을 전혀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것이죠. 셰익스피어는 성적인 특징을 보편적인 인간 욕구를 둘로 분류하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커젤은 [맥베스]를 일종의 반전영화처럼 만들었어요. 다시 말해 피에 굶주린 전쟁광인 남자들과 그에 의해 살해당하는 여자들로 분류한 것입니다. 그리고 레이디 맥베스를 여성의 세계에서 남성의 세계로 떠났다가 다시 여성의 세계로 오가는 존재로 만들어서 새로운 주제와 드라마를 만들었죠. 파스벤더의 맥베스보다 코티야르의 레이디 맥베스가 더 두드러진 영화가 된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지요.

당연히 결정판 [맥베스]는 아닙니다. 그게 필요하시다면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를 보세요. 사실 전 많은 부분이 불만입니다. 예를 들어 "내일 또 내일" 독백은 설정만 있지 영화적으로 악센트를 줄 생각이 전혀 없어요. 이상할 정도로 냉담하고 건성인 연출이죠. 하지만 영화의 주제와 포인트를 생각해보면 셰익스피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커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할 이유도 없고 이런 해석도 이치는 맞습니다. 어차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이 셰익스피어 텍스트의 매력이니 이런 각색물이 하나 나오는 것도 나쁠 건 없죠.



콘텐츠 제공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