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드라마, 스릴러
개봉일 : 2015-11-05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 톰 행크스, 마크 라이런스, 오스틴 스토웰
등급 : 12세 이상
소련 스파이 루돌프 이바노비치 아벨은 그가 미국에서 잠약했던 시절의 활약보다는 그가 체포된 뒤에 벌어진 일 때문에 더 유명한 사람입니다. 스파이로 한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동료의 배신 때문에 잡힌 건 그냥 운이 없었기 때문이고. 하지만 몇 년 뒤 소련상공을 U-2기로 비행하다 격추된 비행사 프랜시스 게리 파워즈와 동독에서 체포된 미국인 유학생 프레드릭 프라이어가 아벨과 맞교환되어 풀려나게 된 사건은 거의 20세기 냉전시대 첩보전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스파이 브릿지]가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인물은 아벨이 체포되었을 때 변호사였던 제임스 B. 도노반입니다. 뉘른베르크 재판 당시 검사였지만 그 이후 보험전문 변호사로 일했던 그는 나중에 아벨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고 나중에 스파이 교환 때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그러니까 첩보물이긴 한데, 스파이가 아닌 스파이의 변호사가 주인공인 영화인 거죠.
정치적으로 날이 선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스파이 브릿지]는 체제옹호물로서도 그럴싸하게 먹힐 거예요. 이 영화는 훌륭한 미국인에 대한 이야기이고 상대적으로 더 나았던 체제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모범적인 남자 가장에 대한 영화이기도 해요. 1960년대엔 그레고리 펙이 영화화에 관심을 가졌다고 해요. 아벨 역으로는 알렉 기네스를 염두에 두었고요. 쿠바 미사일 사태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고 하지만 그 때 만들었어도 당시를 반영한 괜찮은 작품이 나왔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앵무새 죽이기] 영화판과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반공영화는 당연히 아니고 반공주의에 대한 영화도 아닙니다. [스파이 브릿지]는 냉전시대를 거대한 두 세력이 벌이는 총성없는 전쟁으로 보고 각각이 어떤 입장이나 위치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관심을 갖는 것은 맨 밑에서 싸우는 첩보전의 보병들과 그 주변 사람입니다. 여기서 영화는 굉장히 선명한 주제를 끌어내는데, 이런 종류의 체제전쟁에서 진정으로 승리하는 것은 올바르고 정의로운 쪽이며, 애국주의의 선동이나 그로 인한 공포는 여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노반은 그 올바름을 대표하는 한 명의 시민이죠. 그는 의뢰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변호사일뿐만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휴머니스트입니다. 그리고 그런 두 입장이 이 영화의 해피엔딩을 끌어내죠. 그레고리 펙이 그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도 이해가 됩니다.
스필버그의 시대물이 종종 그렇듯, 영화는 종종 지나치게 단순명쾌해집니다. 아벨과 파워스를 대칭으로 놓거나 담을 넘는 뉴욕의 아이들을 베를린 장벽과 연결시키는 연출 같은 걸 노골적이기 짝이 없고요. 하지만 영화의 선명한 주제를 생각해보면 이런 접근법이 썩 잘 어울린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단순한 주제는 단순하게 말해야죠. 쓸데없이 냉소적으로 굴어봐야 뭐가 나오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