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드라마
개봉일 : 2023-12-06
감독 : 브래들리 쿠퍼
출연 : 캐리 멀리건, 브래들리 쿠퍼
등급 : 15세 관람가
제가 레너드 번스타인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함께 20세기 후반 하이파이 시절 지휘계의 쌍두마차였다고 한다면
분명 아니라고 반박하시는 분들이 나오시겠죠.
하지만 번스타인이 카라얀과 맞먹는 스타 파워를 가진 지휘자였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지 않나요.
무엇보다 카라얀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가깝게 느껴진 사람이기도 했죠.
일단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온 더 타운]을 작곡했고, [청소년을 위한 콘서트]의 호스트였으며,
책도 많이 썼고, 게다가 말러에서부터 마이클 잭슨에 이르기까지 취향도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전 이 사람의 개인사에 대해서도 꽤 많이 알았습니다.
예를 들어 번스타인이 양성애자라는 사실은 죽기 전에 알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 소문은 잘 건너오지 않는 시절이었는데 말이죠.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마틴 스콜세지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꽤 오랫동안 굴리고 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둘 다 한 번씩 감독을 하려고 시도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결국 주연배우인 브래들리 쿠퍼에게 감독직이 갔습니다.
스필버그는 [스타 이즈 본]을 보고 감독으로서 쿠퍼에 대한 믿음이 갔다고 해요. 쿠퍼는 각본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영화는 당연히 번스타인의 경력을 따라갑니다.
1943년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 데뷔에서 시작해서 죽기 직전까지요.
그러니까 번스타인 일생의 굵직한 시기 상당부분이 영화에 나옵니다. 몇몇은 남아 있는 영상 기록을 충실하게 재현했고요.
하지만 영화는 음악보다는 개인사에 집중하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내인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와의 연애와 결혼생활입니다.
이 관계가 그냥 평탄하기만 했지만 영화에 들어갈 이야기가 없었겠지요.
하지만 번스타인은 양성애자였고 끊임 없이 수많은 남자들이 둘 사이에 개입합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쇼윈도 부부였느냐, 그것도 또 아니고요.
비스타 비율로 컬러로 찍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영화는 아카데미 비율로 찍혔습니다.
두 주인공의 로맨스와 신혼을 다룬 전반부는 흑백, 그 이후는 컬러지요. 전반부는 고풍스러운 할리우드 로맨스 같습니다.
하지만 컬러로 넘어가면서 결혼 생활의 현실이 찾아옵니다. 그 현실이라는 게 평균적인 현실과는 좀 차이가 있긴 하지만.
[스타 이즈 본]과 마찬가지로 두 예술가의 연애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배우였던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보다 지휘자/작곡가인 레너드 번스타인의 명성이 훨씬 크니,
영화는 당연히 번스타인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건 영화가 번스타인에 대해 훨씬 가차없다는 말도 돼요.
영화는 번스타인의 매력과 재능에 대해 온갖 좋은 이야기를 하지만 그만큼이나 이 사람의 이기주의와 비겁함에 대해서도
잔뜩 이야기하거든요. 제가 클래식을 다룬 옛날 할리우드 영화에서 싫어했던 그 들쩍지근한 변명 따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영화의 기둥이 번스타인이고 쿠퍼 역시 실존 인물을 그럴싸하게 흉내낸 메이크업 (이 분장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비유대인 배우에게 과장된 유대인 코를 붙인 게 아니냐고요)으로 유명한 모델을 열정적으로 재해석해내는데,
영화의 감정적 중심은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에게 쏠려 있습니다. 그건 별로 이상하지 않은 일이겠죠.
대부분 사람들은 (아무리 합의하에 그랬다고 쳐도) 바람둥이 남편보다는 그런 남편을 인내하는 아내 편을 들 테니까요.
그리고 펠리시아를 연기한 캐리 멀리건은 쿠퍼가 한 것과 같은 스턴트 연기 없이도 나올 때마다 화면의 중심에 섭니다.
이게 스타 배우/감독의 에고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캐리 멀리건의 이름이 쿠퍼보다 먼저 나오는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음악보다 인생에 치중한 영화라고는 했지만, 역시 음악가의 영화이다 보니 음악의 비중이 만만치 않게 큽니다.
그리고 번스타인은 영화에 어울리는 소스를 엄청나게 남겼어요.
말러와 베토벤, 월튼과 같은 다른 작곡가들의 곡도 있지만 여전히 번스타인이 직접 작곡한 수많은 곡들이 영화음악에 사용됩니다.
번스타인은 의외로 영화음악을 그렇게 많이 작곡한 편은 아니었지만([워터프론트] 딱 하나만 했습니다) 그와 상관 없이 이 사람의
음악은 정말 훌륭한 영화음악의 소스예요.
연출자로서 브래들리 쿠퍼는 과시적이고 화려한 테크니션입니다. 그런 면에서 제작자인 스콜세지와 스필버그의 연장선에 있어요.
종종 과한 부분이 있긴 한데 (번스타인이 뜬금없이 [팬시 프리]의 댄서가 되는 부분 같은 거 말이죠) 전 하고 싶은 건 그냥 하는 게
좋은 거 같아요. 단지 [스타 이즈 본]과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기본적으로 비슷한 세계를 사는 비슷한 커플의 비슷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사람이 어디까지를 커버할 수 있는지를 보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거 같아요.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