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스릴러, 액션
개봉일 : 2015-10-22
감독 : 김봉주
출연 : 손현주, 엄지원, 배성우
등급 : 15세 이상
[더 폰]은 [숨바꼭질] 이후 꾸준히 이어지는 손현주 스릴러 시리즈의 제3탄으로, 이전까지는 주로 김명민이 주연을 맡았던 머리 나쁜 한국식 스릴러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SF입니다. 잘 나가는 변호사의 아내가 살해당하는데, 하필이면 그 날이 비정상적인 태양폭풍이 일어난 날이었다고 합니다. 1년 뒤 똑같은 태양폭풍이 부는데, 그 때문에 시공간에 이상한 혼선이 생겨 1년 전 아내와 전화 통화가 가능해집니다. 변호사는 1년 뒤의 정보를 갖고 아내를 대피시키지만 바뀐 시간선에서 여전히 아내는 살해당해있고 자긴 아내 살인의 누명을 쓰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는 엉터리이고 논리적으로는 구멍투성이이며 아이디어면에서는 무개성적인 기성품이지만 잘 다루면 나쁘지 않은 설정입니다. 여기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건 이 설정의 독창성과 재미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죠. 설정은 말 그대로 음식을 담아내는 그릇이고 음식은 처음부터 따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더 폰]을 만든 사람들은 그릇 자체가 음식인 줄 압니다.
그 결과 엄청나게 머리를 안 쓰고 게으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변호사의 정보를 받고 의사 아내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하지만 범인은 다시 기회를 노려 아내를 공격하고 그 와중에 다리에 부상을 입습니다. 곧 범인은 다시 아내를 죽이고 남편에게 불리한 증거를 시체 근처에 던질 계획이죠.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장 큰 병원의 응급실로 가서 치료를 받고 경찰에 연락하고 범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남편이 범인이 아니라는 말도 해야 하고요. 이건 범인이 경찰이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의사 아내는 자기가 다니는 병원의 응급실에 숨어들어가 혼자 치료를 한 다음 남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자기를 찌른 칼을 병원에 숨겨놓고는 도시를 방황합니다. 1년 뒤의 남편 역시 그 증거를 입수한 뒤엔 모든 일이 해결된 것처럼 굴고 있고요.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 넋이 나간 것처럼 구는 걸까요. 이들이 정상적으로 행동했을 때에 다음 위기 상황을 도입할 방법을 생각해내기가 귀찮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안 쓰고 대충 러닝타임을 채우겠다는 태도로 끝까지 가는 거죠. 당연히 도전과 응전은 시시해지고 후반부로 갈수록 맥이 풀립니다. 사실 변호사 남편은 죽어라 뛰어다니기만 할 뿐이지 문제해결에 별 도움도 안 됩니다.
액션도 싱겁고 허술합니다. 이 영화엔 청계천 등불축제를 배경으로 한 긴 액션이 나오는데, 정말 "아이디어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지능 대결 같은 건 당연히 없고 이 장면을 재미있게 꾸미겠다는 의욕도 없습니다. 변호사 남편은 그냥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물에 빠지고 그게 전부예요. 비슷한 상황을 훨씬 소박한 재료로 깔끔하게 해치운 [성난 변호사]의 추적 장면과 비교해보세요.
디테일도 허약합니다. 예를 들어서 엄마가 죽고 아빠가 1년 동안 살인누명을 쓰고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중학생 딸이 텅 빈 집에 혼자 살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복선들은 날것으로 그대로 놓여 있어서 발견의 재미 따위는 하나도 없죠. 이런 게 하나둘이 아니라 곧 영화가 붕괴 되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들어보니 손현주에겐 계속 이런 종류의 '고생하는 남자' 역할만 들어온다고 하더군요. 배우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건 한계가 있죠.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그걸 고려한다고 해도 [더 폰]의 각본보다 나은 건 얼마든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