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드라마
개봉일 : 2015-04-09
감독 : 임권택
출연 : 안성기, 김규리, 김호정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임권택의 [화장]은 김훈의 이상문학상 수상 단편이 원작이죠. 영화화된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때 한 번 읽었고 영화 보기 전에 한 번 더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소설이 '순문학'이 되려고 스스로의 순도를 높일 때마다 화자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간달까. 전 화자가 하는 말은 거의 믿기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아내의 투병을 기록할 때나 어린 회사직원에 대한 연정을 폭포수처럼 쏟아낼 때나 모두 공감능력이 결여된 남자의 고도로 조작된 변명처럼 보여요. 제가 믿을 수 있는 건 단 하나. 주인공이 전립선 비대증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죠. 그 묘사는 참 절절하더라.
임권택의 영화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거 같은 원작보다는 유한 편입니다.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옮겨갔으니 스토리텔링에서 주인공의 통제력이 줄었고 그 역할을 안성기가 하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철저하게 대상화된 원작의 여성 묘사가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더 편한 내용이 된 건 아니에요. 그보다는 알리바이 조작처럼 보이죠. 주인공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그런 욕망을 품는지에 대한 이유를 두 여자들이 알아서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회사직원 추은주는 주인공의 삶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아내는 주인공이 마지막에 하는 매정한 선택을 추가 설명까지 붙여 대신 해줍니다. 그러니까 원작이 화자의 변명이라면 영화는 원작에 대한 변명입니다.
영화는 올드합니다. 디지털로 찍었을 뿐 임권택의 80년대 영화와 크게 다를 게 없죠. 80년대는 임권택의 예술적 전성기였으니 그렇게 나쁜 말은 아닐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노장 영화감독들이 만든 영화들이 종종 그렇듯 현실세계나 동시대 영화와의 접점이 약한 편입니다. 삼인칭 인칭대명사가 여기저기 어색하게 꽂혀 있고 취재한 정보를 기계적으로 쏟아내는 대사와 그 대사를 후시녹음 성우처럼 읊는 배우들은 암만 봐도 올바른 연기 지도를 받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이 노장 감독은 나이를 먹으면서 계속 성숙하는 대신 자신의 전성기에 묶여 버린 것입니다. 이 영화가 80년대에 나왔다면 조금 다르게 보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감상은 같았을 겁니다.
안성기는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지만 전 이 배우가 오픈된 캐릭터를 할 때가 더 좋습니다. 김규리와 김호정은 어쩔 수 없이 대상화되어 있습니다. 물론 둘 다 원작보다는 존중 받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영화가 두 사람의 몸을 보여주는 방식에는 오싹한 냉담함이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임권택의 영화에 디폴트로 내장되어 자주 튀어나오는데 이게 감독의 개성인지 옛 세대의 잔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콘텐츠 제공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