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코미디
개봉일 : 2023-08-15
감독 : 이한
출연 : 유해진, 김희선
등급 : 12세 관람가
이한의 신작 [달짝지근해: 7510]는 십여년 전엔 극장가에 꽤 많았던 장르, 즉 로맨틱 코미디에 속해있습니다.
요샌 로맨틱 코미디를 극장에서 보는 것 자체가 드문 행위가 되었는데, 이건 모두에게 손해입니다.
이런 영화를 관객들과 함께 극장에서 볼 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따로 있어요.
게다가 이런 중간급 영화가 극장에서 버텨야 영화 시장이 건전해지지요.
[달짝지근해: 7510]가 십여년 전 로맨틱 코미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의 연령대입니다.
유해진은 1970년생. 김희선은 1977년생. 50대와 40대입니다.
실제 캐릭터의 연령대는 조금 낮습니다만, 그래도 중장년의 연애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건 극장용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가 중장년의 이야기로 옮겨가고 있는 현상의 사례로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 제목 끝에 붙은 7510도 주인공들 나이만큼 연륜을 보여줍니다. 두 주인공 이름이에요. 치호와 일영.
유해진이 연기한 치호는 제약회사 직원입니다.
이미 여러 히트작을 낸 적 있는 보물급 연구원인데, 사회성이 떨어지고 단순한 사람입니다.
영화는 치호가 어렸을 때 겪은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이를 설명합니다.
일영은 얼마 전에 취직한 대출심사업체 콜센터 직원인데,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고 혼자 딸 진주를 키워왔습니다.
두 사람은 일영의 직장에서 처음 만나 같이 식사를 하는 '밥친구'가 되고 곧 연애를 시작합니다.
이 연애에는 장애가 있습니다.
치호에겐 폭력적이고 책임감 없는 전과자인 형 석호가 있는데, 동생 피를 빨며 먹고 사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이 남자는 일영이 치호에게
접근하는 게 싫습니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치호에게 직장을 떠날 것을 권유하는 일영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고 싶습니다.
영화의 각본(이병헌의 오리지널 각본을 각색한 것인데 원작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은 쿨함이나 세련됨과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치호와 일영 모두 아주 세련된 사람은 아니고 '최불암 유모어집' 수준의 구닥다리 아재 개그가 대놓고 나옵니다.
이 촌스러움이 중장년의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정작 영화로서는 의외로 세련된 구석이 있습니다.
유치하고 촌스러운 재료들로 만들어진 건 맞는데 그게 영화적으로 꽤 재미있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종종 관객들의 기대에서 엇갈리는 진행도 나오고 코미디의 리듬감도 좋습니다.
관객들 앞에서 잘난 척은 안 하는데 그래도 기대 이상의 무언가가 계속 나와요.
아, 그리고 영화는 이한과 전에 같이 일했던 배우들이 카메오가 꽤 많이 나오는데, 이들이 그냥 깜짝 쇼를 하는 게 아니라 두 주인공 주변에서
상당히 역동적인 세계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제외하더라도 단역과 엑스트라들의 비중이 커요.
아마 두 주인공이 없더라도 이 세계는 다른 의미를 갖고 그냥 알아서 잘 굴러 갈 거 같아요.
연애물로 보면, 남성 중심 이야기입니다. 형식적으로 영화는 치호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일단 속된 말로 말하면 두 배우의 '와꾸 합'이 안 맞는 걸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김희선이 연기하는 알영은 유해진이 연기하는 치호의 온갖 단점을 자연스럽게 품어주고 즐거워하는 사람으로 전 이런 캐릭터를 '받아주는 여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러닝타임이 흐르면 일영의 이야기도 나름 다양한 복잡성을 갖고 전개되고 둘의 비중은 균형을 잡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악역을 만들지 않으려 하지 않는 사람 좋은 영화입니다. 단지 전 그 시도가 좀 비현실적으로 보였습니다.
저에게 이 영화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건 유해진과 김희선의 캐릭터가 연애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차인표가 연기하는 석호가 갑자기 개과천선을 한다거나 진선규가 연기하는 회사 사장이 한선화가 연기하는 도박벽 있는 편의점 알바와 계급을 넘어선 사랑을 하는 설정이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암만 생각해도 좋게 끝났을 거 같지 않습니다. 영화는 종종 남성적인 폭력을 그리면서 불안감을 조성합니다.
그 장면들은 극적으로 잘 배치되긴 했고 나름 안전망도 있는데...
그러니까 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이런 폭력의 공포를 머리로는 분명 알고 있는데 알고 있는만큼 충분히 느꼈는가?
하지만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달짝지근해: 7510]는 종종 들어가는 블랙 유머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게 관객들에게 호소하는 밝고
긍정적이고 명랑한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여름 시즌에 이런 영화가 하나 나와 선전해주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