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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개요   :  스릴러, 드라마

   개봉일   :  2023-08-15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  킬리언 머피, 에밀리 블런트

   등급   :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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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는 그냥 논리적인 영화입니다. 

놀란은 이전까지 블랙홀 소재 영화와 제2차 세계대전 영화를 연달아 찍었어요. 

그런데 이 두 주제와 겹치는 사람이 누구죠? J. 로버트 오펜하이머입니다. 

정말 그래서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은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보입니다.


20세기 초반은 수많은 '천재 과학자'를 낳은 시대지만, 정작 이들을 다룬 전기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 

시각적으로 극적이지 않고, 관객들이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과학 영역 바깥에도 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이 전기 영화 주인공의 자격증을 따게 되는데, 

오펜하이머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인류역사상 최초로 핵무기를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지만 그 뒤에 자신의 발명품에 대한 죄책감에 휩싸였고 

수소폭탄 반대를 하는 등 정부 정책에 맞서다가 결국 정치적 희생양이 됐죠. 

여전히 과학자 주인공인 이야기지만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굳이 20세기 물리학을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내에도 번역된 마틴 셔윈과 카이 버드의 전기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가 원작입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 그렇듯 원작은 소스 제공의 역할에 그친 거 같습니다. 놀란의 각본은 보다 융통성 있습니다. 

[덩케르크]에서 그랬던 것처럼 세 개의 시간선을 오가며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시간선은 오펜하이머의 학창시절부터 시작해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던 시기까지를 커버합니다. 

두 번째 시간선은 오펜하이머 청문회를 다루고 있고, 

흑백으로 찍은 세 번째 시간선은 스트로스 제독의 상무장관 임명을 위한 청문회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은 음악적으로 연결되어 있지요. 세 번째 시간선은 두 번째 시간선을 회상으로 불러오고, 두 번째 시간선은 첫번째 시간선을 불러오고요. 

종종 영화적 리듬은 세 개의 시간선을 하나로 통합하기도 합니다.


3시간짜리 전기영화인데,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박진감이 넘칩니다. 그 일부는 그냥 평범해 보이는 장면에서도 계속 둥둥거리며 

긴장감을 유발하는 루드비히 고란손의 음악 때문이라는 의심을 버릴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굉장히 재미있게 이야기되는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일단 주인공을 아주 잘 골랐어요. 

오펜하이머는 로스 앨러머스에 모인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난 과학자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가장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사생활에서부터 핵폭탄에 대한 고뇌까지 건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모델이 된 실존인물 스스로가 생전에 이 모든 것들을 근사하게 전시했지요. 


게다가 이 인물의 이야기는 인류의 운명과 연관되었을 수도 있는 거대한 주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중간에는 사회에 대한 과학자의 책무, 과학자와 정부와의 관계와 같은 묵직한 주제가 배치되어 있고요. 

기괴할 정도로 반지성 정책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정부를 갖고 있는 우리에게 이 주제는 결코 '그 옛날 미국의 매커시즘 시절 이야기'가 아니죠.


언제나처럼 놀란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처럼 영화를 풉니다. 

그리고 그 중요한 무언가는 고뇌하는 백인 남자고요. 이런 취사선택 때문에 종종 갑갑해지는 구석도 있습니다. 

그리고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하는 심각함은 종종 영화에 균열을 가져옵니다. 

예를 들어 오펜하이머의 옛 여자친구 질 태틀록의 묘사 같은 것들요. 

태틀록을 아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건 어렵겠지만 이 영화에서 플로렌스 퓨를 다루는 방식은 좀 당황스럽죠. 같은 캐릭터를 

다루더라도 '고뇌하는 백인 남자를 다룬 엄청 심각한 영화'의 틀에서 조금만 벗어났어도 이런 어색함은 없었을 수도 있는데.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용감하고 대담한 영화이며 종종 튀어나오는 미심쩍은 장면들도 결코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모자란다고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히치콕 스릴러이기도 하고 종말론적 호러이기도 하고 캐릭터 스터디이기도 하며 과학사 강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소위 '명연기'의 전시장이기도 하고요. 킬리언 머피는 또 하나의 대표작을 추가하게 되겠네요.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