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공포
개봉일 : 2023-05-10
감독 : 장형모
출연 : 이푸름, 권민혁, 김모범, 김준형, 심소영
등급 : 15세 관람가
저번 주에 공개된 두 편의 한국 영화 [스트리머]와 [롱디] 사이에는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두 편 모두 이야기 전체가 디지털 화면 위에서만 벌어져요. 이전엔 이와 같은 영화들을 파운드 푸티지물이라고 불렀는데,
이 명칭은 물리매체의 시대에나 어울리는 것으로 이 영화들엔 안 맞는 것 같습니다.
파운드 푸티지물은 관객들이 앞으로 보게 될 영화가 촬영된 뒤 한 동안 버려지거나 숨겨져 있다가 발굴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스트리머]와 [롱디]를 이루는 영상 상당수는 설정상 유튜브나 기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생중계되었습니다.
[블레어 윗치]에서 시작된 가짜 다큐멘터리의 유행이 기술과 매체의 발전을 거치면서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는 중인 것이죠.
요새는 이런 걸 스크린라이프 영화라고 한다고 합니다. 나중엔 여기에서 또 다른 이름의 장르가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스트리머]를 보면 [블레어 위치]에서부터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가 보입니다. [블레어 윗치]에서는 영화가 존재하기 위해
16밀리 카메라, 디지털 캠코더, 음향기기 그리고 이 묵직한 기계들을 다룰 수 있는 전문가들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다섯 명의 스트리머들이 동료 스트리머가 실종된 폐가에 들어간다는 이야기인 [스트리머]에서는
최소한 10개의 카메라가 등장해요. 모두 카메라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를 갖고 있고 그 기계엔 당연히 셀카 기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다 전문적인 용도로 쓰이는 보다 큰 카메라도 있지요.
다시 말해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찍기 위해 굳이 현실과 타협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디오에서는 여전히 타협이 필요해요.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호러 효과를 위해 5.1 채널 이상의 입체 음향이 동원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모험은 수십만명의 사람들 앞에서 생중계되고 있으며 그 사람들은 영화 내내 댓글로 피드백을 줍니다.
이 영화에는 [블레어 윗치]의 세 주인공이 겪었던 것과 같는 고립감은 없어요.
주인공들은 물리적으로는 갇혀 있지만 얼굴도 알 수 없고 대체로 혐오스러운 수많은 구경꾼들과 지나칠 정도로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 모든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스트리머]는 매년 꾸준히 쏟아지고 있는 [블레어 윗치] 아류 호러 중 하나이고
이 장르에서 [스트리머]처럼 스트리밍 서비스를 흉내낸 영화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건 얼핏보면 비슷비슷해 보이는 이런 영화들이 [블레어 윗치]를 꾸준히 흉내내면서도 변화하는 세계가 꾸준히 새로운 어휘를 제공하고
있으며 관객들은 이것을 거의 실시간으로 따라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트리머]는 그렇게 튀는 영화는 아닙니다. 귀신 들린 집에 들어간 스트리머 영화들은 벌써 꽤 많죠.
그 중에선 작년 부천 영화제에서 소개되었던 [목숨 건 스트리밍] 같은 재미있는 영화도 있습니다.
[스트리머]는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설정이나 호러 효과는 평범한 편이고요
(관객들의 비명은 호러 영화가 아닌 [롱디]에서 더 확실하게 나왔습니다).
하지만 신인배우들만 등장한 영화인데도 캐릭터 구별이 쉽고 연기가 설득력 있으며,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아주 바보 같거나 재미없게 굴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바보들아, 경찰을 불러!"라고 관객들이 외칠 때 쯤이면 정말로 누군가가 경찰을 부르기는 한단 말이죠.
영화를 보는 동안 특별히 새로운 체험 같은 건 하지 않았고 곧 잊히겠지만 그래도 보는 동안 그럭저럭 수긍했습니다.
생중계를 구경하는 군중의 천박함을 공격하는 것이 무서운 귀신을 연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영화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