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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 타르

   개요   :  드라마

   개봉일   :  2023.02.22

   감독   :  토드 필드

   출연   :  케이트 블란쳇

   등급   :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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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필드의 [타르]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평행우주는 2002년에 우리 우주에서 갈라졌습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베를린 필을 떠난 해지요. 그 자리를 우리 우주의 사이먼 래틀 대신 안드리스 데이비스라는 지휘자가 물려받았고 그 후임자가 이 영화의 주인공인 리디아 타르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 베를린 필은 최초의 여성 지휘자를 배출했어요.


영화는 초반에 리디아 타르가 얼마나 대단한 재능과 강렬한 매력을 가진 인물인지를 꼼꼼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린 이를 따라가는 동안 이 우주가 우리의 우주보다는 클래식 음악계의 여성 진출과 장악이 조금 더 빨랐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하긴 그러니까 최초의 여성 지휘자가 베를린 필에 들어올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그와 함께 우리는 영화의 도입부가 리디아 타르 인생의 정점이고 이후로는 내리막이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타르]는 고전 비극입니다. 잘 나가는 거대한 인물이 오만과 운명의 힘에 의해 몰락하는 이야기요.


타르의 몰락은 미투 운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타르의 제자 중 한 명이 타르에게서 끔찍하게 나쁜 일을 당했다고 폭로하고 다니고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타르의 인생은 점점 더럽혀집니다. 그리고 도입부에서 선언한 말러 교향곡 사이클이 과연 완성될 수 있을지 걱정하게 되지요.


관객들은 타르가 무슨 일을 저질렀고 그 주변에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영화는 거의 100 퍼센트 타르에 감정이입한 상태에서 진행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타르가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지만, 정작 타르 바깥의 외부세계에서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는 짐작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공격의 일부는 부당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일어난 일과 SNS에 편집되어 돌아다니는 영상을 비교하면서 거기에 '악마의 편집'이 개입되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어요. 하지만 타르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 해도 이 사람이 말과 행동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 역시 확신할 수 있습니다. 타르는 억울할 수 있어도 결백하지는 않습니다.


영화가 논쟁적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의 선택과 태도, 시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미투 시대에 이런 영화는 하나 이상 나오긴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필드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여성 동성애자 지휘자를 선택했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눈에 뜨이기도 어려웠겠지요. 중장년 백인 남성이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면 관객들은 훨씬 이 사람을 훨씬 단순하게 볼 것이고 훨씬 가혹하게 대하겠지요. 


하지만 모든 면에서 소수자이고 거의 맨몸으로 선두에 선 리디아 타르와 같은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관객들은 주인공에게 일단 기회를 주게 됩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다 꼼꼼하게 해석하게 되지요. 이건 분명 의미가 있는 작업인데 과연 이게 최선의 시기일까요? 앞에서 말했지만 아직 클래식계에서 여성 지휘자들은 타르와 같은 위치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허구의 평등성을 먼저 주면서 시작하는 영화란 말이에요. 재수없어 하는 관객들이 있어도 당연합니다.


케이트 블란쳇의 영화입니다. 두시간반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우리가 조금의 지루함 없이 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이유 절반 이상은 블란쳇의 존재감이지요. 블란쳇에게도 이건 엄청난 기회였을 텐데, 여성 캐릭터에게 이 정도의 권력, 그리고 그에 따른 몰락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영화는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지 [캐롤]처럼 편하게 반복해서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전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스트레스 때문에 계속 움찔하는 중이거든요.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