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드라마
개봉일 : 2015-09-24
감독 : 김정훈
출연 : 권상우, 성동일, 서영희, 박해준, 이승준
등급 : 15세 이상
[탐정: 더 비기닝]이란 제목의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들어갔으니 전 당연히 권상우와 성동일이 툭탁거리면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영화를 보게 될 줄 알았죠. 그런 영화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제 눈엔 다른 영화가 먼저 들어오던 걸요. '서영희 괴롭히기' 영화요.
한 번 들여다보죠. 서영희의 캐릭터는 애가 둘입니다. 유치원 다니는 아들과 젖먹이 애가 하나 있어요. 애 낳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빨간펜 선생님 일을 하러 나가야 해요. 그러는 동안 만화방 주인인 남편이라는 작자는 탐정놀이에 푹 빠져서 툭 하면 만화방을 걸어 잠그고 나가 친구가 형사로 일하는 근처 경찰서에 죽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젖먹이 애는 누가 돌보고 있을까요? 이웃인 빵집 아줌마요?
셜록 홈즈가 되고 싶은 자칭 탐정 남편은 지금이 위기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는 형의 부인이 무참하게 살해당했고 형사인 친구가 용의자로 몰렸어요. 누군가 나서긴 해야겠지요. 애 볼 사람에 없다면 애를 데리고 나가서라도요. 하지만 영화를 보면 이게 특별한 경우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늘 그랬어요. 보면 서영희가 보살이란 생각밖에 안 듭니다.
기왕 사건이 터졌으니 해결은 해야겠지요. 하지만 이 남편은 탐정으로서도 영 별로입니다. 영화는 꾸준히 그의 탐정 재능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그가 던지는 건 대부분 엉성하게 엮은 억측에 불과해 '명탐정'의 인상을 주는 데엔 계속 실패합니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장면에선 작가가 슬쩍 알려준 티가 나는데, 마지막 반전을 살리려고 추리의 중간과정을 무리하게 뜯어고친 티가 역력하니까요. 무엇보다 사건 자체도 추리물로서 매력이 떨어집니다. 제대로 된 추리물이라면 명탐정의 추리가 진행되면서 잔가지가 정리되고 용의자들이 줄어야겠죠. 하지만 이 영화는 정반대예요. 스포일러라 더 이상 말하기가 곤란하지만.
그렇다면 광역수사대에서 왔다는 형사 양반과 탐정 남편의 콤비 플레이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도 영 별로입니다. 형사 양반에게 주어진 코미디는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아무나 (그러니까 주로 탐정 남편) 두들겨 패고 욕하는 게 대부분인데, 한국 영화 형사라서 다른 식의 코미디는 상상이 안 가는 걸까요? 둘은 좋은 콤비도 아닙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합이 안 맞고 서로에게 믿음을 주지 못해 사람이 죽을 뻔하죠. 역할 분담도 영 엉성하고. 그나마 둘이 궁합이 맞아 보일 때는 공처가 놀이를 하고 있을 때뿐입니다.
영화의 가장 큰 결함은 코믹 추리극을 지향하는 영화이면서 사건이 너무 어둡다는 것입니다. 추리물이니 누군가 죽는 건 당연하죠. 원론만 따진다면 코미디는 온갖 끔찍한 소재를 다 다룰 수 있어야 하고.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암만 생각해도 도가 지나칩니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이 죽어요. 여섯 명. 모두 여자. 심지어 그 중 한 명은 어린아이입니다. 한 명은 범인의 보복을 두려워하던 성폭행 피해자고요. 전 별별 이야기를 보고 웃을 수 있지만 살해당한 어린아이의 시체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웃을 생각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태도가 글러먹었습니다. 살해당하는 여자들이 여섯 명이니, 20분당 한 명씩 죽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탐정 남편이란 작자는 직장에서 돌아와 애를 돌보고 있는 아내를 대신해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줄 알죠. 영화도 여기에 전적으로 동조해 "아버지 때가 좋았지"라며 툴툴거리고 있는데, 그냥 할 말이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