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드라마
개봉일 : 2022-10-27
감독 : 박송열
출연 : 박송열, 원향라
등급 : 12세 관람가
우리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두 주인공인 정희와 영태의 현재 사정이 정확히 어떤지는 알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이 부부라는 것, 아마도 정희가 교사, 영태가 영상 관련 업종 종사자라는 것, 두 사람 모두 지금 실직 상태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죠. 그 상황은 코로나 때문일까요? 아닌 거 같습니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 속 우주에는 역병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우주에서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불안이 이 영화 속 우주에 반영되어 있는 건 맞겠지요.
한없이 구질구질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것도 운이 좋다면요. 영화에는 종종 관객들을 긴장하게 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영태가 친구로부터 다단계 유혹을 받거나, 정희가 사채를 빌려 쓰는 장면 같은 거 말이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부부에겐 내리막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두 사람 모두 그렇게까지 야무져 보이지 않아요. 쉽게 호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영화는 은근히 밝습니다. 거의 코미디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이고 실제로 몇 장면은 대놓고 코미디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관객들이 기대하거나 걱정하는 파국을 은근슬쩍 계속 피해가요. 상황이 엄청나게 좋아지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이들의 삶이 갑자기 바뀔 거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 둘은 계속 이전처럼 저공비행을 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계속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삶의 질을 아주 떨어뜨리지도 않으면서요. 영화가 암만 봐도 자기반영적이면서 자조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두 사람에겐 부인할 수 없는 자긍심이 느껴져요.
시작하자마자 제작비가 얼마인지,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해지는 영화입니다. 일단 영화는 웬만한 유튜브 블로그보다 화면과 음향이 날것입니다(적어도 그렇게 느껴집니다). 등장하는 배우도 얼마 없고 카메라는 대부분 옛날 무성영화처럼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건 카메라 뒤에 아무도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하죠. 엔드 크레디트를 보면 답이 풀립니다. 감독, 제작자, 각본가, 편집자 기타등등인 박송열은 영태 역 배우이기도 합니다. 각본가, 제작자, 편집자 기타등등인 원향라는 정희를 연기했고요. 두 사람은 부부이고 이 영화는 일종의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두 사람은 전에도 같은 방식으로 [가끔 구름]이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당시에는 부부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모든 면에서 투박한데, 이 투박함이 영화의 스타일로 연결됩니다. 카메라가 어쩔 수 없이 고정되어 있다면 배우들은 그에 맞는 동선과 각도를 찾아냅니다. 감독의 연기가 아주 프로페셔널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정교한 전문배우의 연기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극사실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는 오로지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진 수제품에서만 느껴질 수 있는 소박한 개성이 있습니다. 두 주인공이 영화 내내 그러는 것처럼 이 영화를 만든 커플도 제한된 조건 안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아낸 것입니다.
출처: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