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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역

   개요   :  드라마

   개봉일   :  2021-09-23

   감독   :  권민표, 서한솔

   출연   :  설시연, 배연우, 박소정, 한송희

   등급   :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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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표와 서한솔의 [종착역]은 중학교 사진반에 속한 네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입니다. 아이들은 방학 숙제로 ‘세상의 끝’을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찍어오라는 숙제를 받고, 이를 아주 직설적으로 해석해요. 1호선의 끝인 신창역을 찍기로 한 것이죠. 모험이 시작됩니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는 네 배우(2018년이 배경인 듯하니 지금은 모두 고등학생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의 ‘연기력’이 얼마나 뛰어난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다. 권민표와 서한솔의 ‘연출력’에 대한 평가도 비슷하게 유보하게 됩니다. 이 영화만 보아선, 우린 이들이 전문 직업인으로서 잘 다듬어지고 노련한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는지 알 수 없어요. 그런 식으로 줄을 세워 평가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종착역]은 정교하게 연기되거나 연출된 영화가 아닙니다. 반대로 이 영화는 1시간 20분 미만의 짧은 러닝타임을 거치는 동안 인위적인 표현이나 기교를 최대한으로 줄여요. 여기엔 꼼꼼한 각본이 없습니다. 배우들에게는 구체적인 대사 없이 기본적인 상황만이 주어지고 영화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의 즉흥적인 결과물을 담아요. 당연한 일이지만 그 중 상당수는 설정을 주기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영화 내에서 계획된 것과 즉흥적인 것을 구분하는 건 쉽지 않아요.


즉흥적인 연기에도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배우의 연기도 중요하지만 어리거나 아마추어인 배우들과 일할 때는 감독의 연출력도 중요해집니다. 아마 우리가 아는 굵직한 ‘명배우’들 상당수는 카메라 앞 애드립의 경험을 훈장처럼 달고 있을 겁니다. 경험없는 어린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연출자의 테크닉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윤가은 감독의 어린이 주연 영화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요.


하지만 [종착역]의 목표는 ‘명연기’를 잡아내 ‘명장면’을 연출하는 게 아닙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당시엔 20대 후반이었던 두 남성감독이었고, 이들은 중학교에 다니는 동시대 여자아이들에 대해 뭔가 안다고 우길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종착역]은 이들이 전혀 알 수 없는 세계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조심스러운 탐구의 과정입니다.


이는 굉장히 아트하우스 영화적인 태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통적인 극영화의 작법에서 벗어나 있을 뿐, [종착역]의 접근법은 지금의 한국관객들에게 친근하며, 우린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보다 속된 표현을 갖고 있습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요. 이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마치 기본적인 설정만 주어진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출연자처럼 행동합니다. 이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약간의 허구의 터치가 더해졌지만 자기 자신과 아주 가까운 아이들로, 영화에 나오는 대사와 설정 상당수는 배우 자연인 자신을 반영합니다.


[벌새]처럼 중학생 여자 아이의 영혼을 송두리째 드러내는 영화를 기대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런 영화는 [벌새]처럼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완전히 통제하면서 전문배우와의 협업을 통해 캐릭터를 쥐어짜는 영화에서나 가능합니다. [종착역]에서 네 주인공과 그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안전지대에 있습니다. 이들은 주어진 조건 하에서 영화에서 보여지는 자신의 이미지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종착역]은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영화지만 그만큼 자기검열의 결과물이기도 해요. 그건 일반적인 극영화에서라면 호러나 스릴러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관객들이 안심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건 결코 나쁜 게 아닙니다. 그냥 성격일 뿐이죠. [종착역]은 참을성 있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어른들과 예의바른, 적어도 타인 앞에서 상식적인 예의를 지키려 하는 네 중학생들의 긴 대화처럼 보입니다. 이들의 영혼 깊은 곳까지 들어다보고 싶은 관객들은 아쉬워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극장에서 보는 모든 영화마다 그런 경험을 할 필요는 없어요.


무엇보다 이 적절하게 조율된 상태에서도 영화는 우리에게 놀라운 발견의 순간들을 선사합니다. 그것은 엄격하게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지는 네 주인공들의 자연스러운 관계 발전 묘사이기도 하고, 아무런 예고없이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역사적 인식이기도 해요. 후반으로 갈수록 영화는 조금씩 우연의 신에 기댄 강령술처럼 보이고, 영화는 완벽한 각본의 영화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독특한 귀기를 띕니다.



출처: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