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스릴러
개봉일 : 2021-06-30
감독 : 권오승
출연 : 진기주, 위하준, 박훈, 길해연, 김혜윤
등급 : 15세 관람가
[미드나이트]의 주인공 경미는 콜센터에서 수어 상담사로 일하는 농인입니다. 어느 날 경미는 집에 돌아오다가 연쇄살인마 도식의 희생자가 되어 쓰러진 소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뒤로 경미와 역시 농인인 경미의 엄마는 도식의 타켓이 됩니다. 경미는 간신히 탈출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마스크를 벗고 다시 나타난 도식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장애인 주인공을 다룬 스릴러는 이미 선례가 있지요. 가장 유명한 건 프레드릭 노트의 연극과 그 연극을 각색한 오드리 헵번 주연의 [어두워질 때까지]. 우리나라에도 시각장애를 다룬 김하늘 주연의 [블라인드]가 있습니다. 청각장애를 다룬 영화는 앤소니 윌러의 [무언의 목격자]가 있고, 이 영화의 감독 권오승이 일차 레퍼런스로 삼은 작품도 그 영화입니다.
일단 영화의 장점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발동이 걸린 순간부터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주인공이 위기에서 벗어날 때까지 관객들은 계속 긴장해야 하니까요. 단지 그 재료는 부정적인 경험의 연속입니다. 재수없고 위험한 젊은 남자가 여자들을 추적하고 괴롭히고 폭행하는 상황이니까요. 단지 영화는 의외로 실제로 잔인한 묘사는 없어요. 도식의 살인도 프롤로그에서 단 한 번 보여지는데, 그것도 카메라 시야 바깥에서 일어나지요.
단지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젊고 예쁜 농인 여성'의 이미지, 특히 이런 사람들의 무력함을 페티시화한 게 아닌가, 아니면 적어도 페티시화를 방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지점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건 관객들이 이런 캐릭터를 보는 기계적인 습관과도 연결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런 캐릭터들을 다루려면 조금 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어요.
영화의 갑갑함은 주인공을 위기로 몰아넣는 상황의 인위성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화 속 경찰의 무능함도 좀 과한 느낌이고, 분명 폭력사건의 목격자이고 피해자인 경미가 아무런 감시 없이 방치되는 것도 그렇고, 군중 속에서 벌어지는 클라이맥스에서는 위기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특히 그 장면에서 경미가 도식에게 애원하는 장면은 그냥 뜬끔 없어요. 캐릭터와도 안 맞고 설정과도 안 맞으며 기괴하게 깁니다.
하지만 이 갑갑함은 많은 농인, 특히 농인 여성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영화에서 경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제대로 된 목격자이고 위기에 빠진 피해자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들의 편견과 무심함 때문에 이는 쉽지 않습니다. 위기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 같다고 했지만, 클라이맥스가 군중 속에서 벌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식이 경찰서 안과 군중 앞에서 뻔뻔스럽게 경미를 추적하고 괴롭힐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아무 이유없이 비장애인 남자를 장애인 여자보다 더 믿는다는 끔찍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경미는 저 남자가 가해자이고 자신이 피해자라는 걸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하는데, 전 논리가 맞는 거 같습니다. 적어도 전 비슷한 군중 묘사를 다룬 [베테랑]의 클라이맥스보다는 이 장면이 더 이치가 맞아 보였어요.
영화가 남성성을 다루는 방식도 조금 재미있었습니다. 해병대 출신의 마초 꼰대인 소정의 오빠는 관습적으로 안심이 되는 사람입니다. 주인공은 장애까지 있는 가녀린 젊은 여성. 힘이 되는 우리 편이 있으면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영화는 악당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고 실제로 여러 번 휘두르는 이 남자에게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동생을 구하는 데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에요. 영화가 남자들의 습관적인 연대와 동조를 그릴 때는 더욱 냉정합니다. 특히 경찰들, 군인들. 이들의 무능함과 위험함은 근육 힘과 상관 없습니다. 여자들을 제대로 믿지 않고 남자들을 쓸데 없이 잘 믿는다는 게 이들의 가장 큰 문제예요.
많이 거친 영화이고 미심쩍은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농인 주인공을 기계적으로 쓴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독이 취재를 통해 넣었지만 제가 눈치채지 못한 디테일도 많았을 거라 생각하고요. 아마 농인 관객들 눈엔 저보다 더 많은 것이 보이겠지요.
출처: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