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드라마
개봉일 : 2021-04-15
감독 : 클로이 자오
출연 : 출연프란시스 맥도맨드
등급 : 12세 관람가
클로에 자오의 [노매드랜드]는 국내에선 [노마드랜드]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제시카 브루더의 2017년작 논픽션을 극영화로 옮긴 영화입니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이 쓴 [은퇴의 종말]이라는 제목의 2014년 하퍼스 매거진 기사에 기반을 두고 있고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연상되는 내용입니다. 집을 버리고 밴이나 캠핑카를 타고 일자리를 찾아 미대륙을 떠도는 사람들요. 단지 이 새로운 유랑족들은 대공황 시절 가난한 농부들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2007년 경제위기 때 부동산을 포기하고 길에 쓸려나온 백인 중산층이 대부분이고 이들 상당수는 노인입니다.
암담한 상황입니다. 편하게 쉬어야 할 나이에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고 대기업에게 착취당하고 중노동에 시달리고. 브루더는 책에서 이들을 부려먹는 착취 시스템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지요. 그런데 책은 이런 삶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미국 백인 중산층의 삶에 대한 기대와 고정된 삶에서 해방된 사람들의 해방감과 자유 역시 묘사하고 있지요.
브루더의 책과는 달리 자오의 책은 픽션입니다. 자오는 펀이라는 이름의 허구의 인물을 만들었어요.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연기한 주인공이지요. 펀은 책에도 잠시 언급되는 엠파이어라는 작은 마을 출신이고 남편이 죽고 마을을 지탱하던 석고 공장이 문을 닫자 길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브루더가 책에서 다룬 삶을 살고 브루더가 묘사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 대부분은 실제 유랑족들로, 린다 메이, 스웽키, 밥 웰스와 같은 사람들은 브루더의 책에도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입니다. 단지 이들은 자기 자신 대신이 자신에 기반을 둔 동명의 허구 캐릭터를 연기하지요. 이들 중 한 명은 심지어 영화 속에서 죽는데, 동명의 배우는 지금도 잘 멀쩡하게 살아있습니다. 전 자오의 영화를 이번에 처음 보는데, 아마추어 배우의 활용은 이 사람의 장점이라고 들었어요.
영화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사이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오갑니다. 기본적으로는 극영화지만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다큐멘터리의 터치를 끌어다 쓰는 것이죠. 많은 장면들을 실제 유랑족들 사이에서 찍었기 때문에 실제로 몇몇 장면은 그냥 다큐멘터리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직업배우인 프랜시스 맥도먼드 같은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전문배우로서 극영화를 끌고 가야 하지만 주변 다큐멘터리 환경과 아마추어 배우들과도 적절하게 어울려야 하는 것이죠.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맥도먼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이 역할이 능숙합니다. 당연히 이런 걸 잘 해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보면 신기할 정도예요.
원작과는 달리 자본주의 시스템의 노동착취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적은 편입니다. 이 때문에 아마존사에 대한 중립적인 묘사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2시간 안쪽의 극영화를 만들려고 한다면 선택을 해야 하고 논픽션에 기반을 둔 극영화가 책에 들어있는 모든 이야기를 다 할 필요는 없지요. 무엇보다 아마존에서 직접 영화를 찍으려면 타협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 중 상당수는 브루더(이 영화에선 제작도 맡았습니다)의 책을 챙겨볼 것이고, 아마존의 노동 착취 시스템이 묻히는 일은 없겠지요.
대신 영화는 이들의 긍정적인 면에 더 집중합니다. 대기업에 착취당하는 것도 맞고, 말년에 고생을 하는 것도 맞지만, 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미국 자본주의 시스템이 강요하는 소비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삶에는 분명 고유의 아름다움과 미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투쟁은 서부극만큼이나 미국적이예요. 정확히 말하면 백인 미국인스럽습니다. 보시면 아시겠고, 책에서도 짧게 언급되어 있지만, 이들 유랑족 대부분은 백인이거든요. 비백인들에겐 이렇게 사는 것도 백인들보다 위험하니까요.
굉장히 미국적인 소재와 이야기가 젊은 중국인 감독에 의해 연출된 것이지요. 이는 신기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미국적인 이야기와 풍광에 매료되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이미지를 재현하려 했으니까요. 자오에게 이는 자신에게 자리를 준 미국이라는 나라의 탐구 과정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걸 확인하려면 전작들을 보아야겠지만요.
출처: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