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미스터리, 스릴러
개봉일 : 2021-04-21
감독 : 서유민
출연 : 서예지, 김강우
등급 : 15세 관람가
서유민의 [내일의 기억]은 익숙한 장르 세계에서 시작됩니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병원에서 깨어나는 거죠. 다행히도 이 영화의 주인공 수진에게는 친절한 남편 지훈이 있습니다. 여전히 과거의 기억은 없지만, 지훈의 도움으로 새 삶에 적응하며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던 수진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갑자기 주변 아파트 주민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사고들이 보이는 거죠. 그 중에는 살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설정은 어느 장르로도 갈 수 있습니다. 정말 수진이 예지 능력을 갖게 되었다면 SF나 호러, 판타지가 되겠지요. 하지만 이런 장르 도구 없이 현실적인 답을 내놓는 방법이 있는데, 이 영화는 후자입니다. 그리고 이러는 게 더 재미있지요. 이 영화에서도 진상이 밝혀지는 순간 제 주변 관객들 사이에선 "와!"하는 탄성이 들렸습니다.
그러니까 브왈로-나르스자크나 크리스티앙 자프리조 같은 프랑스어권 작가들이 20세기 중후반에 썼을 법한 이야기를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암만 봐도 초자연적인 거 같은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는데, 이게 나중에 현실적으로 설명이 되는 거죠.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대부분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너무 꼬아 놔서 자연스럽게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부자연스러운 디테일과 선택들이 이어지고요.
영화의 만듦새를 떨어뜨리는 것처럼 보이는 투박함도 대부분 이를 커버하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정상적인 영화에선 이웃에 화재가 발생했다면 대충이라도 그 사고의 기승전결을 관객들에게 제공해주겠지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를 수상쩍게 얼렁뚱땅 넘기고 그 때문에 편집이 이상해보입니다. 그 "와!"의 순간을 넘긴 뒤부터는 전체 상황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이게 워낙 배배 꼬여서 거의 기괴해 보일 지경입니다.
재미없다는 건 아닙니다. [내일의 기억]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릴러 영화로서의 재미를 잃지 않는 작품이에요. 앞에서 언급한 기괴함도 재미의 일부이고요. 진상의 설명 뒤에는 거의 장엄하게 느껴질 정도의 K-신파가 이어지는데, 각오만 되어 있다면 이것도 재미있습니다. 두 배우의 기존 이미지를 적절하게 활용한 캐스팅도 스릴러와 신파 모두에 그럴싸하게 잘 어울리고요. 아주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완성도를 버려야 할 때도 있지 않을까요.
출처: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