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드라마
개봉일 : 2021-01-27
감독 : 이승원
출연 :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
등급 : 15세 관람가
세상에 [세자매]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이 몇 편이나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안톤 체호프의 희곡이 처음은 아니었겠죠. 하지만 체호프 이후로 이 제목은 공식적인 장르가 된 것 같습니다. 다양한 성격의 세 여자를 가족을 울타리에 가두고 충돌시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장르요.
이승원의 신작도 이 장르에 속해 있습니다. 이 영화를 아주 짧게 요약한다면, 김선영, 문소리, 장윤주가 자매로 나오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스토리보다는 캐스팅과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성격이 더 중요하지요. 들어보니, 원래 계획에서는 김선영이 막내였고 자매의 연령대가 조금 높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소리가 주연 밑 제작자로 들어오면서 나이가 내려갔다는군요. 아, 그리고 이승원은 김선영의 남편입니다. 10년째 극단을 같이 운영하고 있다고.
이 세 배우가 연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기혼자입니다. 그리고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불행해요. 첫째 희숙은 버릇없는 딸과 가정에 무관심한 남편에 시달리며 위축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둘째인 미연은 대학교수인 남편을 둔 전업주부이고 교회 성가대 지휘자입니다. 셋 중 가장 멀쩡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죠. 셋째인 미옥은 얼마 전에 유통업을 하는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한 극작가로 슬럼프에 빠져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계속 따로 진행되다가 (중간에 미연이 미옥과 희숙을 한 번씩 찾아가긴 해요) 1시간 30분 무렵에서 드디어 모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과거가 드러나요.
이들의 공통점을 하나 더 들라면, 다들 그렇게 상종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까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불행하다고 했는데, 그건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불쾌한 사람들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불행에 이들의 개성이 반영된 것이지요. 감정이입하는 대신 약간 거리를 두고 사디스틱한 태도로 삐딱하게 구경할 때 가장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런 고통과 불쾌함을 통해 세 주연배우의 연기력이 과시되는 영화이기도 해요.
영화는 한국 중산층 개신교 신자의 위선과 폭력과 어리석음이 폭로될 때 가장 재미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개신교도 집안 출신이고 특히 둘째 미연은 여전히 열성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 문화에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라면 보다가 비명을 지를만한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나지요. 암만 봐도 내부인의 경험이 반영된 각본입니다.
영화는 아버지의 생일잔치를 위해 이들이 고향으로 내려가며서 방향전환을 합니다. 이들의 어두운 과거가 폭로되고 지금도 막장극이었던 드라마는 더 막장극이 됩니다. 이 과거는 이들의 지금 성격을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그렇게만 본다면 너무 단순하지 않을까요? 어렸을 때의 경험이 사람의 미래를 결정짓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요. 하여간 갑작스러운 폭로와 그 이후의 난장판은 그 때까지 꽉 막혀 있던 이야기에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줍니다. 그렇다고 그게 만족스러울 수는 없지만요.
개인적으로는 후반이 조금 더 길었으면 했습니다. 세 자매의 개인사는 아무래도 좀 전시되는 느낌이 있어서요. 보는 재미가 분명 있긴 합니다. 배우들이 연기력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일단 같이 있을 때 재미있을 게 분명한 배우들을 캐스팅했다면 이들이 얽힐 기회도 충분히 주어야죠. 그랬다면 갑갑하게 정체되어 있는 캐릭터들이 보다 재미있는 방향으로 발전할 기회를 얻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출처: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