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드라마, 미스터리, 멜로/로맨스
개봉일 : 2020-10-21
감독 : 벤 휘틀리
출연 : 릴리 제임스, 아미 해머
등급 : 15세 관람가
대프니 뒤 모리에의 [레베카]를 각색하는 건 신성모독이 아닙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아카데미 수상작 영화가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 뒤로도 이 소설은 꾸준히 각색되었었어요. 대부분 텔레비전물이었지만요. 벤 휘틀리가 감독한 넷플릭스 영화가 나오면 텔레비전 각색물이 한 편 더 나오는 것이죠. 요샌 텔레비전 영화와 극장영화의 경계가 많이 희미해졌지만요. 벤 휘틀리의 [레베카]의 문제점은 감히 히치콕을 건드렸다는 게 아니라, 그 이후 나온 수많은 각색물과 비해서도 특별히 좋지 못한 결과물을 냈다는 것입니다.
아주 완벽하게 재미없을 수는 없는 영화입니다. 원작이 되는 뒤 모리에의 소설이 재미있으니까요. 그냥 따라가기만 해도 관객들은 시선을 돌리지 않을 것이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벤 휘틀리의 영화는 지루하지 않아요. 페이스도 빠르고 계속 뭔가 분주하게 일이 일어납니다. 단지 리듬이 엉망입니다. 그냥 엉망인 게 아니라 소설 각색물스럽게 엉망이에요. 원작에 대해 아무 지식이 없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줘도 이들은 이 작품이 훨씬 더 재미있는 소설의 각색이라는 걸 알아챌 것입니다. 재미있게 쓰인 소설의 장면만을 추려내 별 고민없이 연결한 듯한 영화예요. 히치콕의 영화는 원작에 비교적 충실하지만 이런 식으로 소설에 종속되지 않았습니다. 그 자체로 훌륭한 영화지요. 하지만 휘틀리의 영화는 좀 맥없는 각색물입니다. 클린트 만셀의 음악도 여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시도가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후반부엔 조금 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려 한 시도가 보입니다. 경찰과 대중은 맥심 드 윈터에게 더 냉정합니다. 이름없는 주인공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탐정처럼 행동하고요. 댄버스 부인의 결말도 조금 바뀌었어요. 이해는 가는데 다들 성의없이 연출되어서 새로운 감흥은 없습니다. 도입부에서 주인공과 맥심의 관계는 진도가 조금 더 빠른데, 전 이건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캐릭터와도 맞지 않고 원작을 많이 고치지 않은 각본과도 따로 놀지요.
휘틀리가 그나마 공을 들인 부분은 가면무도회 장면입니다. 이 부분은 그림부터 휘틀리스럽고 붉은 드레스를 입은 레베카의 유령을 따라가는 주인공의 액션과 같은 것은 히치콕이나 이후 각색물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입니다. 이게 '주인공이 레베카에게 상징적으로 빙의된다'라는 호러스러운 결말로 연결된다면 신선한 무언가가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영화는 원작을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의욕을 갖고 덤벼든 사람들이 어느 단계에서 에너지를 잃고 주저앉은 결과랄까.
주인공 역의 릴리 제임스, 댄버스 부인 역의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의 캐스팅은 좋은 편입니다. 일단 이미지가 맞고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감독과 각본가의 협조가 없으니 이들의 노력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합니다. 맥심 역의 아미 해머는 미스캐스팅입니다. 이 사람은 어느 영화에 들어가도 조금씩 미스캐스팅 같은데 이 영화에서는 유달리 심해요. 뻣뻣하기가 마네킹 같습니다.
히치콕처럼 고딕스러운 흑백을 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이 영화는 지나치게 밝습니다. 그 때문에 맨덜리는 그냥 흔해 빠진 큰 저택처럼 보입니다. 컬러도 지나치게 노골적이라 종종 내용을 방해합니다. 특히 전 맥심이 초반에 입고 나오는 노란 수트가 진짜로 싫었습니다. 왜 맥심이 그런 옷을 입고 다닐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출처: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