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범죄, 드라마
개봉일 : 2015-04-29
감독 : 한준희
출연 : 김혜수, 김고은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차이나타운]은 인천 차이나타운을 무대로 한 조폭영화입니다. 키워준 보스와 맞장뜨는 조직폭력배 이야기로, [달콤한 인생]도 생각나고 [신세계]도 생각나고 그렇습니다. 이들을 의도적으로 흉내냈기 때문이 아니라 (물론 참고는 했겠죠) 이야기 자체가 장르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다른 식으로 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개별 작품의 모방이 아니라 그냥 가족 유사성의 결과인 거죠. 하여간 흔한 이야기입니다.
보다 자세하게 줄거리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공 일영은 전철역 코인로커 안에서 발견된 아이로, 인천 차이나타운의 보스인 '엄마' 밑에서 자랍니다. 똘똘하게 자기 일을 잘 하던 일영은 어느 날 엄마의 살인명령을 거부하게 되고 결국 혼자 힘으로 엄마와 맞서게 되지요. 그 뒤로는 예상된 경로를 따르는데 가끔은 벗어나기도 합니다.
영화의 가장 큰 차별점은 두 주인공이 여자라는 것입니다. 보통 여자에게 돌아가는 캐릭터가 남자로 나오기도 하고요. 이 정도면 거의 기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전환 작업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계속 새로운 무언가를 꾸준히 만들어냅니다. 내용은 바꾸지 않았지만 디테일들이 쌓이면서 다른 분위기가 생기죠. 몇몇 큰 덩어리가 바뀌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폭력에는 카타르시스가 제거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일영을 여자로 만들고 '여전사 액션'도 피하다보니 일영이 겪기도 하고 가하기도 하는 폭력은 굉장히 현실적이고 냉랭합니다. 이 과정 중 이런 한국 조폭 영화 특유의 남성적 자기 도취가 사라지고요. 비슷한 한국 영화의 폭력 장면들을 비교하면 이런 스타일이 굉장히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이런 영화들의 원형 역할을 하는 [대부]와도 한 번 비교해보죠. [대부]는 핏줄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차이나타운]에서는 혈연관계 없는 사람들이 가족처럼 살면서 서로에게 근친상간적인 욕망을 품고 있습니다. 파탄으로 끝나는 건 마찬가지인데 방향과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영화가 가부장이 제거된 빈 공간을 어떻게 다루고 상상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또 다른 부분은 삭제에 있습니다. 영화는 끝날 때까지 '엄마' 캐릭터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습니다. 엄마가 일영에게 왜 그러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저만 해도 서너 개의 설명을 단번에 만들 수 있죠. 하지만 영화는 이 부분을 채우지 않고 일부러 방치해요. 사실 설명이 어느 정도 제거된 건 일영을 포함한 다른 캐릭터도 마찬가지죠. 이렇게 군데군데가 가려지고 부서지고 방치되다보니 익숙한 이야기 재료로 만든 영화임에도 중의적이 되고 난폭한 전환이 생기며 엉뚱한 분위기가 흐릅니다. 종종 그 삭제 자체가 이야기의 중요한 소재와 주제가 되기도 하고요. 이 영화에서 "엄마가 왜 그러는지 우린 정말 모르겠어"라는 문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해보세요.
캐스팅이 좋은 영화입니다. 김고은은 기대했던 대로이고 김혜수는 그 이상을 보여주죠. 캐릭터를 완전히 설명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상황이 종종 지나치게 직설적인 방향으로 빠지기도 하는 이 배우의 스타일에 새로운 깊이를 더한 것 같습니다. 흔한 '카리스마 넘치는 조폭 두목' 스테레오 타이프에서도 벗어나 있고. 엄태구, 조복래, 고경표, 김수안도 적재적소에 배치된 좋은 배우들이고요. 그냥 좋은 배우들이 알아서 잘 하는 게 아니라 억지로 합을 맞추어 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한 그림 안에 통합된 느낌이랄까요.
드문 실험을 했다고 해서 조폭 영화가 조폭영화를 넘어서거나 조폭영화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는 건 아닙니다. 성전환의 시도는 흥미롭지만 정작 감독의 여성 캐릭터의 활용 능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이 영화에서 유일한 '여자' 역할을 맡은 쏭의 캐릭터를 보세요). 하지만 간단한 전환작업을 충실하게 한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차이나타운]은 무척 생산적인 영화입니다.
콘텐츠 제공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