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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의 이야기

   개요   :  코미디, 멜로/로맨스

   개봉일   :  2020-05-01

   감독   :  앨리스 우

   출연   :  레아 루이스, 다니엘 디머, 알렉시스 러미어

   등급   :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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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반쪽의 이야기]는 앨리스 우가 [세이빙 페이스] 이후 만든 두 번째 영화입니다. [세이빙 페이스]가 2004년 가을에 나왔으니 계산을 해보시죠. 아시아계 퀴어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첫 영화로 그 정도 성공을 거둔 인재인데, 신작이 이제야 나왔습니다. 참 공평한 세상입니다.

[반쪽의 이야기]의 주인공도 아시아계 퀴어 여성입니다. 아시아인이라고는 자기와 아빠밖에 없는 시골 마을에 사는 엘리라는 고등학생이에요. 우등생이지만 친구가 거의 없고 같은 학교 아이들을 위해 숙제를 대신 해주면서 용돈을 벌고 있지요. 그런데 폴이라는 학교 미식축구선수가 짝사랑하는 애스터에게 보낼 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부탁합니다. 처음엔 밀린 전기 요금을 갚으려 시작했어요. 하지만 편지가 거듭되고 자연스럽게 메신저 대화로 옮겨가면서 엘리는 여기에 진지해집니다.

전형적인 90년대 로맨틱 코미디의 재료들입니다. 고전(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스토리, 언어 재능이 풍부한 틴에이저 주인공들의 날렵한 대사들. [쉬즈 올 댓],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같은 영화들이 모두 이 카테고리 안에 들어갑니다. 단지 영화는 도입부에서 엘리의 내레이션으로 이건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고 못 박고 있지요.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연애와 연애 감정은 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전부는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영화는 아시아계 퀴어 미국 여성의 성장물입니다. 보통 첫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소재인데, 앨리스 우는 두 번째 영화에서 다룬 거죠. 엘리와 폴의 관계는 우의 백인 남자 단짝 친구와의 관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엘리와 폴, 애스터가 [시라노]스러운 설정 속에서 자신을 가둔 껍질을 깨고 어른이 된다는 것이죠. 누군가가 누군가와 맺어지는 결말은 여기서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이들은 모두 고등학교 3학년. 다들 날개를 펴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실험해 볼 때입니다. 연애 이야기의 해피엔딩을 이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요.

21세기에 들어와 점점 더 인위적이 되는 설정이지만 (요새 누가 손편지를 쓰나요) [반쪽의 이야기]는 이 낡은 재료를 아주 섬세하고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악역이 아니고, 어느 누구도 희생자가 아니고, 어느 누구도 도구로 쓰이지 않아요. 가장 머리가 딸리는 폴도 어리석지는 않아요. 자신의 한계를 알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니까요. 영화는 이들에게 완벽한 결말을 주려는 무리한 노력을 하는 대신 조용히 성장의 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을 따온 사랑에 대한 플라톤의 완벽한 비유는 틴에이저 아이들이 새로 맞는 세계 속에서 조용히 부서집니다.

미국 시골 마을 고등학교 배경은 솔직히 좀 지겨운데, 앨리스 우는 여기에도 신선함을 부여합니다. 일단 주인공이 동양인 여자아이면 같은 이야기라도 느낌이 확 달라져버려요. 로맨틱 코미디에 집착하지 않으니 주인공들의 선택이 넓어졌고요. 그리고 전 엘리의 아버지가 역장으로 있는 외딴 기차역의 배경이 정말 좋았습니다. 영화는 진부해질대로 진부해진 장르적 세계에서 담담한 시적 분위기를 찾아냅니다. 


출처: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