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범죄, 드라마, 미스터리
개봉일 : 2020-03-06
감독 : 피터 버그
출연 : 마크 월버그, 윈스턴 듀크, 알란 아킨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피터 버그가 감독한 넷플릭스 영화 [스펜서 컨피덴셜]의 원작은 에이스 앳킨스의 [원더랜드]. 표지를 보면 [Robert B. Parker’s Wonderland]라고 이미 고인이 된 작가의 이름이 앞에 붙어 있습니다. 앳킨스는 로버트 B. 파커가 고인이 된 뒤로 파커의 고정 캐릭터 스펜서를 물려받아 시리즈 소설들을 써오고 있어요. 괜찮지만 파커가 쓴 소설의 맛은 잘 안 난다는 평을 몇 개 읽었습니다. 영화를 다 본 뒤에 원작 줄거리를 확인해봤는데... 닮은 구석이 없더군요.
닮은 구석이 없는 건 스토리만이 아닙니다. 스펜서는 캐릭터 개성이 뚜렷한 인물이죠. 종종 폭력적이 되는 전직 복서 사립탐정이지만 문학과 요리를 좋아하는 교양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장수 시리즈에서 대부분 그렇듯, 캐릭터의 개성은 사건만큼이나 중요하고, 고 로버트 유릭이 주연한 [탐정 스펜서] 텔레비전 시리즈에서는 이 개성을 잘 살렸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아니에요. 보스턴이 배경이고 호크라는 흑인 남자가 파트너로 나오는 걸 제외하면 우리가 아는 스펜서와 닮은 구석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소설 판권을 사고 주인공 이름을 스펜서라고 붙이고 마크 왈버그를 캐스팅한 걸까요. 모를 일입니다.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스펜서는 보스턴 경찰이었는데, 부패경찰인 상사를 두들겨패고 5년형을 받았습니다. 출옥한 바로 그 날, 상사는 살해당하고, 같은 날 죽은 경찰이 살인누명을 씁니다. 스펜서는 트럭 운전사가 되려는 계획을 잠시 접고 사건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알고 봤더니 갱조직과 연루된 부패경찰이 더 있었어요. 그러는 동안 스펜서는 전과자 복서 호크와 룸메이트가 됩니다. 여자친구와는 헤어지지 않았는데, 원작 시리즈의 수잔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고 이름도 다릅니다. 시시요.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이 사람도 원작이 이름을 달고 나왔다면 모욕감을 느꼈을 거예요.
이야기는 그냥 킬링타임용입니다. 정의로운 주인공이 악당들을 때려잡습니다. 사이다. 종종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무기를 버리고 일대일로 붙기도 해요. 왜 그런 귀찮은 짓을 하는지는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이야기는 단순한만큼 공허하기도 합니다. 대단한 탐정능력도 없는 스펜서가 저렇게 빨리 해결할만큼 길가에 증거가 널려있다면 왜 지난 5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걸까요. 보스턴 내사과와 언론이 그렇게까지 무능했던 걸까요.
더 신경 쓰이는 건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천박함입니다. 피터 버그와 각본가 브라이언 헬겔란드는 스펜서를 포함한 우리편 캐릭터들을 보스턴 노동자 계급 영웅으로 만들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 스펜서의 교양인 개성을 날려버린 것이겠지요. 이해는 되지만 여전히 어처구니 없는 선택입니다. 품위와 교양은 주인공의 의무가 아니지만, 천박함도 노동자 계급의 의무는 아니지 않나요. 왜 일부러 처음부터 갖고 있었고 얼마든지 잘 쓸 수 있었던 재미와 매력을 날려버리고 마크 왈버그의 주먹질 영화로 만들었을까요.
출처: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