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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개요   :  드라마, 멜로/로맨스

   개봉일   :  2020-02-12

   감독   :  그레타 거윅

   출연   :  시얼샤 로넌, 엠마 왓슨, 플로렌스 퓨, 엘리자 스캔런, 티모시 샬라메

   등급   :  전체 관람가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을 보고 왔습니다. 이번이 일곱 번째 영화예요. 전에 나온 영화 중엔 조지 큐커, 머빈 르로이, 질리언 암스트롱의 작품들이 유명하죠. 그전에 무성영화 두 편이 나왔고 2018년엔 현대배경의 각색물이 나왔습니다. 그 외에도 무대 버전이 여럿 있었고 텔레비전 시리즈도 만만치 않게 많이 나왔죠. 거윅의 각색물이 좋은 평을 받고 있지만 이 영화가 결정판이 될 일은 없어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겁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소설의 완벽한 각색물이 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원작은 두 권의 책이고 에피소드 위주인데다 미성년의 주인공들이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른이 되잖아요. 영화보다는 텔레비전 시리즈가 더 맞긴 한데 그래도 여러 모로 힘들어요.

거윅의 영화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아주 좋은 각색물입니다. 그리고 새롭고 도전적이에요. 거윅은 원작을 그대로 따르는 대신 해체해서 재구성했습니다. 영화는 2부 중반부터 시작해요. 이미 조는 로리의 청혼을 거절했고, 에이미는 파리에 있습니다. 뉴욕에서 조가 작가로서 경력을 시작하는 동안 1부 고유의 이야기와 2부 초반의 이야기가 삽입되지요. 이 각색은 종종 혼란스럽고 (일단 배우들이 나이를 많이 안 먹으니까요) 1부 고유의 리듬이 깨지긴 하지만 이전 작품과 비교했을 때 2시간 좀 넘는 극장용 영화에 훨씬 잘 어울리는 구조가 만들어져요. 단지 이건 여전히 책을 읽은 독자를 위한 각색이에요. [작은 아씨들]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관객들(전 지금 그 사람들의 뇌를 상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데)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재치있는 각색의 기교로 그치지 않습니다. [작은아씨들]의 각색은 대부분 조금씩 메타였지 않습니까. 원작자 루이자 메이 올콧의 분신인 조 마치는 영화나 드라마 후반에 우리가 지금까지 앉아서 구경한 이들과 같은 내용의 책을 쓰게 되지요. 그런데 거윅은 조금 더 나아갔습니다. 조의 책 속에 인물들을 가두는 대신, 조의 책과 조의 실제 인생을 분리하고, 19세기 대중작가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타협하며 글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래 의도는 무엇이었고 그 글을 쓴 사람은 실제로 누구였는지를 그려보인 것이죠. 그 과정 중 우리가 알고 있는 [작은 아씨들]의 일부는 실제 삶에서 분리된 허구의 영역으로 들어가는데, 이는 무지 안심되는 구석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불만족스러운 원작의 결말을 보완한다고 할까요. 적어도 더 솔직해보입니다. 그리거 이 각색 과정 중 [작은 아씨들]이 갖고 있던 두 개의 특성이 그 이전의 어떤 각색물보다 강해집니다.

첫 번째 특성은 당연히 페미니즘입니다. [작은 아씨들]은 19세기 미국 페미니스트의 작품입니다. 당시의 도전과 한계를 모두 담고 있는 고전이죠. 거윅은 21세기의 관점에서 이 모든 재료들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로맨스의 틀 안에 묻혀 있었던 것들이 드러납니다. 특히 당시 여자들에게 결혼이 어떤 경제적/사회적 의미가 있었는가라는 주제는요. 이제 이건 더 이상 언니의 남자친구와 동생이 결혼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죠. 그리고 이 작업에서 가장 덕을 본 것은 에이미입니다. 늘 자기의 욕망에 솔직하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았던 이 캐릭터는 이 새로운 틀 안에서 정당성을 부여받습니다.

두 번째는 퀴어 주제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조 마치는 퀴어 롤 모델이었습니다. 이 캐릭터가 갑자기 나이 든 독일인 남자와 결혼하는 결말은 누가 봐도 이상해 보였지요. 그것도 옆집 남자애 로리의 청혼을 거절한 뒤였으니 말이죠. 거윅은 이를 어느 정도 해결합니다. 시어샤 로넌이 연기한 이번 조는 지금까지 나온 조 중 가장 퀴어로 해석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렇다고 이 인물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의뭉스러운 존재가 된 건 아니에요. 우린 여전히 조의 욕망과 꿈을 이해하고 있고, 이 퀴어적 욕망의 가능성이 드러나는 순간 그 이해는 더 풍성해지니까요. 조와 로리의 관계, 조와 베어 교수의 관계도 이 새로운 틀 안에서 훨씬 그럴싸해보입니다. "나의 조는 이러치 아나"라는 말이 가장 적게 나오는 영화랄까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도 [작은 아씨들]의 결정판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전 영화들을 버릴 이유는 전혀 없어요. 전 이 영화의 조와 에이미가 최고였다고 선언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이전 각색물의 조와 에이미를 지울 생각은 없어요. 거윅은 훌륭한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건 이전 해석을 완전히 지우는 무언가는 아니었습니다. 단지 이 작품을 통해 [작은 아씨들]의 각색물들로 이루어진 영토는 훨씬 넓어지고 재미있어지고 매력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윅의 영화 이후에도 이 작업은 계속되겠지요.


출처: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