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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맨

   개요   :  코미디, 액션

   개봉일   :  2020-01-22

   감독   :  최원섭

   출연   :  권상우, 정준호, 황우슬혜, 이이경, 이지원

   등급   :  15세 관람가



아침에 [히트맨]을 보고 왔어요. [불타는 내 마음]의 최원섭이 10여년 만에 내놓은 첫 상업영화예요. 제가 그렇게 챙겨서 보는 종류의 영화는 아닌데,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났고, 예고편을 보니 비스타 비율이라 극장을 가릴 필요 없는 거 같아서 그냥 나가서 조조를 보았습니다.

근데 진짜로 안 좋았어요.

영화는 '우리 아빠는 알고 봤더니 첩보원' 장르에 속해 있어요. 가족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중년 기혼 남자를 위로하고 대리 만족시키기 위해 위해 만들어진 장르죠. 내용은 대부분 "내가 알고 보면 무서운 사람이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권상우가 연기하는 주인공은 알고 봤더니 국정원에서 어린 시절 스카웃해 훈련시킨 인간 병기로, 죽음을 위장하고 탈출해 새 신분으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아내와 결혼해서 딸 하나를 낳아 살고 있어요. 어린 시절부터 만화가를 꿈꾸었고 직업도 웹툰 작가. 하지만 작품은 인기가 없고 몰래 공사판에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따로 벌고 있습니다. 그러다 술김에 자신의 실제 경험을 그린 원고를 그리는데, 자는 동안 그걸 아내가 올려버려요. 작품은 대히트를 치고 주인공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악당과 국정원 모두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내와 딸이 납치당하는 건 물론이고요.

당연히 이 모든 건 말이 안 됩니다. 위 문장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술김에 자신의 실제 경험을 그린 원고를 그리는데, 자는 동안 그걸 아내가 올려버려요.' 처음부터 개연성 따위는 기대할 수 없는 아이디어입니다. 당연히 주인공은 자신의 이야기를 적당히 윤색할 생각도, 관련 인물들의 이름이나 외모를 바꿀 생각도 없습니다. 아, 아마 주인공의 웹툰이 지금까지 인기가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새 웹툰이 인기인 건 여전히 말이 안 되지만.

문제는 형편없는 개연성이 아닙니다. 그거야 처음부터 접고 시작하는 거고요. [히트맨]의 진짜 문제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영화는 분주하고 시끄러워요. 모두들 큰 목소리로 떠들고 다들 부지런히 뭔가를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무런 내용이 없는 액션과 대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해요. 굳이 안 해도 되는 말들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 이들은 택배 상자의 포장재처럼 오로지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존재합니다. 개연성이 없어도 일단 발동이 걸린 상황에서 전혀 머리를 쓰지 않는 겁니다.

영화가 꼭 내용이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내용없이 스타일만으로 액션을 끌어가는 게 더 좋을 때도 있지요. 하지만 [히트맨]은 여기서도 불만족스럽습니다. 끝까지 올바른 리듬을 찾지 못하고 도대체 앞으로 나가질 않아요. 이 영화의 각본은 '좋은 각본'이 되는 데도 실패했지만 좋은 액션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 되어주는 데에도 실패하고 있습니다. 계획도 없고 머리도 못 쓰고 억울함과 울분과 자격지심만 남은 주인공이 정체된 상황에서 일차적인 반응만 하는 장면의 연속이에요. 15년 전엔 인간병기 노릇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못만든 영화입니다. 그냥 [엄복동] 수준인데, 말이 없는 건 코미디는 [엄복동] 수준으로 못만들어도 괜찮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출처: 듀나의 영화낙서판